태고총림 순천 조계산 선암사 1부 진입 공간에 이어 2부 대웅전 영역을 시작합니다.
대웅전 영역은 중심 법당인 대웅전과 함께 부속 법당인 지장전이 있으며, 그 외 만세루, 심검당, 설선당, 응향각, 보물장 등의 전각으로 가람을 구성하였으며, 석조물로는 동서 삼층 석탑과 4쌍의 괘불대가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요사인 심검당과 설선당을 배치하고 전면에 누각 만세루를 둔 산지중정형 가람을 구성하였으며, ㅁ자 형태의 마당 중앙에 동서 삼층 석탑이 세워져 있다.
순천 선암사 만세루

범종루에서 누각을 바라보면 정면에 육조고사(六朝古寺) 편액이 걸려있다.
육조고사 편액의 글씨는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저자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1614~1637)이 쓴 것으로, 육조고사(六朝古寺)라 하면 중국 고대 여섯 왕조를 거친 오래된 사찰이라 할 수 있겠다.
후한이 멸망한 뒤 수나라가 통일할 때까지 양자강 남쪽에 있었던 오, 동진, 송, 제, 양, 진을 일러 육조(六朝)라고 한다.
한편, 육조(六祖)는 선종의 여섯 번째 조사인 혜능을 뜻하는 말로, 만일 편액을 육조고사(六祖古寺)라 했다면 육조 혜능의 선법을 계승한, 오래된 사찰이란 뜻이 되니, 응당 朝(조)를 쓰지 말고 祖(조)를 썼어야 이 절의 품격에 맞을 법하다.
그런데 祖로 쓰지 않고 朝로 표현한 의도가 무엇인지 사뭇 궁금하다.
김익겸은 학식이 깊은 문신으로 당연히 祖와 朝를 구분하지 못한 것은 아닐테고, 설마 당시 선암사 승려의 한자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그러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사(古寺)는 오래된 사찰이라는 뜻으로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단어이다. 朝가 세월의 의미를 가진 반면, 祖는 세월보다는 순서의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고사라는 단어에 어울리고 격식에 맞는 단어로 祖 대신 朝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朝는 최상위의 권위를 가진 왕조를 뜻하는 단어로, 단순히 조사(祖師)라는 의미의 祖를 쓰지 않고 한 시대를 열었다는 의미의 朝를 씀으로써 최대한의 격식과 예의를 갖추어 존숭의 의미를 높인 글자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유학자가 불교에 대해 지극한 예의를 표시한 서포 아버지다운 글솜씨이다.

일주문, 범종루, 누각 그리고 대웅전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누각의 아래 통로를 통해 경내로 진입하면서 대웅전을 볼 것으로 기대하지만 선암사의 누각은 강당 형태로 지어져 있어 누각 좌우로 돌아 들어간다.

누각 좌우 어디로 돌아 들어가든 석탑을 먼저 보게 되고 이어 대웅전을 보게 되니 그 또한 대웅전을 보는 방법으로 나쁘지 않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에 이익공 양식의 주심포집으로 짓고 홑처마 맞배지붕을 올렸는데, 측면에 풍판을 달았음에도 지붕을 옆으로 길게 빼내고 네 귀퉁이에 활주를 세워 지붕을 받치고 있다.

만세루(萬歲樓) 편액을 걸어 이 누각이 강당 형태임을 알려주고 있다.

만세루는 평소 폐쇄되어 있고, 법회나 다례재 등 행사 때만 개방한다.


대각국사 의천(좌)과 경운대선사(우)의 다례재 장면이다.
만세루 내부에는 석가모니불 괘불탱을 비롯해 신장탱이 걸려있다.
보물 순천 선암사 석가모니불 괘불탱 및 부속유물 일괄

선암사 석가모니괘불탱은 본존불만 단독으로 등장시킨 독존도 형식의 괘불화이다.
조선 영조 29년(1753)에 쾌윤이 조성한 것으로 조선시대 18세기 중엽 경 불화 화단의 흐름을 살피는데 자료적 가치가 있어 괘불함과 복장유물 등 부속유물과 함께 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화면 중앙에 석가모니불이 우견편단 차림으로 붉은 연꽃을 딛고 서 있고,
상단 좌측에는 구슬 장식이 화려한 금색 탑안에 다보불로 보이는 불상이 사자좌로 앉아 있고, 밖에는 부처를 향해 대요설보상이 합장한 모습으로 배치되었으며, 상단 우측에는 사자좌에 앉아 각자 수인 모습을 달리한 시방불(十方佛)이 묘사되었다.
거의 손상 없이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괘불함은 14곳에 손잡이용 고리가 달려 있으며, 궤의 각 모서리에는 어문(魚文)과 연화문, 나비무늬 등이 투각된 금속 장석을 장식하였다.
복장유물은 황동제 후령통 1조와 감지주서(紺紙朱書) 발원문 1매와 백지묵서 9매, 백지주서 및 인본, 다라니 9매 등으로, 비교적 현상이 양호한 편이다.
보물 순천 선암사 대웅전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현종 1년(1660)에 재건하였는데, 영조 42년(1766)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었고, 순조 24년(1824)에 다시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지었으며, 전각 전면과 후면에는 주간포를 3개, 양 측면에는 2개씩 삽입하여 화려하고 웅장하다.
특히 건물 내부의 공포는 연꽃 봉오리 장식으로 마감하여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수법을 나타내고 있어 200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기둥 위에 용머리를 장식하였는데, 대웅전 규모에 비해 작은 크기로 하였으나 무척 사실적으로 조각하였다.
만일 용두를 크게 했더라면 용두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대웅전의 멋이 흐트러졌을 것이다.

영안부원군 김조순(1765~1832)이 쓴 대웅전(大雄殿) 편액이 걸려있다.
김조순은 사람됨이 뛰어나 정조의 신임을 얻었으며, 순조의 장인으로 순원왕후의 아버지이자 안동 김씨의 실권자였던 인물이다.
정순대비의 명으로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어린 순조를 보좌하여 30여 년 간이나 공헌하여 조야의 칭송을 받았다. 당파나 세도의 풍을 형성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성이 어질고 지나치게 너그러운 탓에 그를 둘러싼 척족 세력들이 후일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기반을 조성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정면 창호의 문짝 아래에 궁창이 있지만 가운데 어칸은 문짝에 궁창을 들이지 않은 대신 머름을 설치하였다.
머름으로 인해 문턱이 높아지면서 가운데 칸으로 출입이 힘들자 출입하지 말라 써붙이지 않아도 스스로 측면에 설치한 출입문을 이용한다.
머름을 통해 멋도 내면서 불가의 질서도 지키는 방법을 대웅전 지은 대목장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행동은 환경이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은 후세에 선암사 3무(無) 중 하나로 알려지게 된다.
선암사 3무 중 첫 번째는 이미 언급했던 천왕문이 없는 것이고, 두 번째가 바로 문지방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선암사의 모든 전각 기둥에는 주련이 없는데 이것이 선암사 3무(無)의 마지막 세 번째 무(無)이다.
주련을 읽고 해석하여 이미 깨달았다면 더는 필요 없고, 또한 진리를 말로 설명하려는 순간 이미 진리가 아니라는 선종의 핵심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해석을 잘못해 혼란을 주느니 아예 없애 버리고,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마음으로 직관하라는 선종의 가르침이다.
글자 대신 공간 전체가 곧 가르침인 불입문자를 실천하는 것으로, 깨달았으면 말이 필요없고, 모르면 말하지 말라.
지극히 철학적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순천 송광사는 탑, 석등, 풍경이 없는 것을 일러 송광사 3무(無)라고 한다.

우물천장의 중앙은 불상이 안치된 곳으로, 이 부분을 천장 안으로 밀어 넣어 닫집 형태로 조성하였다.

우물천장은 연꽃을 그려 장엄하였고, 보 위에 용을 조각한 충량을 걸었으며, 건물 안쪽 공포는 4출목으로 높게 하고 화려한 연꽃 봉오리 장식으로 마감하여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장중한 분위기의 전각 내부에는 고주 사이에 불단을 조성하여 벽체를 세우고 후불탱화와 함께 석가모니불을 독존으로 봉안하였는데, 사뭇 위엄이 서려있다.


선암사 대웅전은 내4출목 공포의 살미를 연봉형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건축 수법이나 포작의 장식성 등이 매우 뛰어나다.
이러한 기법은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부안 내소사 대웅전이나 개암사 대웅전과 그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오른손으로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였다.
본존불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이다.
원래 조선 영조 41년(1765)에 조성한 영산회상도가 있었으나, 조계종과 소유권 분쟁이 한창이던 1999년에 분실되어 현재 진품과 동일하게 그린 모사품을 걸었다.
화면 중앙에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상단부터 용왕과 용녀, 타방불 2구, 팔부중, 10대 제자, 8대 보살, 사천왕 2구가 반씩 나뉘어 좌우에 배치되었다.
삼장탱화

삼장탱화는 지장 신앙이 확대되어 나타난 것으로 천장, 지지, 지장보살을 한 폭에 표현한 탱화인데, 명칭이나 도상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정확하지 않다. 다만 민족 고유의 숭천 신앙(崇天信仰)과 지지 신앙(地祗信仰), 망인낙지천도 신앙(亡人樂地薦度信仰)을 수용하여 삼계 우주관(三界宇宙觀)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면 중앙에 상계교주 천장보살을 두고 좌우에 음부교주 지지보살과 유명계교주 지장보살이 배치되었으며, 각 보살마다 협시보살과 권속이 표현되었다.
신중탱화

상단에 범천과 제석천이 배치되었고, 중단에는 자재천과 예적금강 그리고 위태천 동진보살이 역삼각형 구도를 이루었으며, 화면 전체에 여러 호법 신중을 표현하였는데, 모두 122위로 구성된 신중탱화이다.
감로탱화

감로탱화는 굶어죽는 고통을 받은 아귀에게 음식을 베푼다는 데에서 비롯되었으며,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극락으로 인도하는 천도재에 사용하는 불화이다.
상단에는 칠여래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관음, 지장보살이, 우측에는 인로왕보살이 표현되었고, 중단에는 음식이 차려진 재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승려의 법회 장면과 이를 지켜보는 청중이 그려져 있고, 재단 아래 두 아귀가 묘사되었으며, 하단에는 현실 세계의 여러 생활 모습을 그렸다.
구시 / 노주 / 괘불대

대웅전 향 좌측에 길이 3m가 넘는 목조 구시가 비치되어 있고,

출입문 옆에 노주가 세워져 있다.
노주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 새벽 예불이나 저녁 예불 때 불을 밝히기 위해 돌기둥 위에 등잔을 올려놓는 석물로, 화재의 우려가 크기 때문에 옆에 방화수 등을 반드시 비치한다.
전기가 들어오는 지금은 노주를 사용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방화수와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다.

대웅전 앞 마당에 4쌍의 괘불대가 위치를 서로 달리하여 둥글게 세워져 있다.
보물 순천 선암사 삼층 석탑

대웅전 앞마당에 동일한 형태의 쌍탑이 세워져 있는데 좌측을 동삼층석탑, 우측을 서삼층석탑이라고 부른다.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삼층 석탑으로, 규모와 수법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한 사람이 동시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부분적으로 약간의 손상을 입기는 했으나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층별 체감률의 비례가 적절하여 전체적으로 우아하며 규율성이 느껴지는 탑으로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잘 계승하였으며, 전남에서 유일하게 건립된 고려시대 쌍탑으로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석탑의 특징은 괴임돌에 있다.
상층 기단 덮개 중앙에 3단 괴임돌을 조각하고 그 위에 탑신을 올렸으며, 탑신을 덮고 있는 지붕돌의 중앙에도 2단 괴임돌을 조성하여 위층을 올렸는데, 지붕돌에 이와 같은 괴임돌 수법을 한 것은 사례가 드문 것으로 희귀하게 보고 있다.

삼층 석탑을 해체 수리할 때 동탑 1층 하부에서 유물 3점이 발견되었으며, 198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청자삼이소호라 하는 작은 청자 항아리(좌)와 유개호로 불리는 높이 12cm의 백자항아리(우) 그리고 백자항아리 안에서 발견된 높이 6.2cm의 금동사리탑(중앙)이다.
높이 6.5cm인 청자삼이소호는 어두운 녹청색이며 어깨 부분의 세곳에 구멍이 뚫린 꼭지가 있다.
높이 12cm의 유개호는 담청이 섞인 백색유가 두텁게 입혀져서 불투명하며 16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유개호 안에 있던 높이 6.2cm의 금동사리탑은 사리가 모셔진 팔각 원통 모양의 사리탑으로 14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순천 선암사 심검당

대웅전 좌측 동삼층석탑 앞에 요사채 심검당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영역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담장을 두르고 대문을 세워 법당으로부터 독립된 모습을 하고 있다.

심검당이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려진 바는 없으나 1823년 화재 이후 재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선방으로 지은 심검당이 지금은 템플스테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템플스테이 문짝 위 벽체에 팔괘 중 건(☰, 하늘)과 감(☵, 물) 문양이 새겨져 있고,

쪽문 쪽 벽체엔, 수(水, 물)와 해(海, 바다)가 새겨져 있다.
선암사는 산이 강하고 물이 약한 강산 약수(強山弱水)의 지형에 자리하였기 때문에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여긴 나머지 하늘의 도움을 받기 위한 비보책으로 물과 관련된 글자를 전각에 부적처럼 썼다.
건(하늘, ☰), 감(물, ☵)이나 수(水), 해(海) 모두 하늘이 뿌려주는 비를 의미한다.
그런데 수해라는 말은 볼수록 의미심장하다.
해(海)는 바다이기도 하지만 한량없이 많다는 뜻도 있다. 그래서 물바다, 불바다, 피바다로 써서 무한을 표현하고 있다.
지난날 화재로 인해 그 피해가 얼마나 크고 무서웠으면 수(水)만으로 부족했던지 아예 수해(水海)라 했다.
글자 하나가 당시의 참혹함을 알려주고 있다.
순천 선암사 설선당

심검당 맞은편에 설선당이 자리하고 있다.

설선당 역시 언제 지어졌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심검당과 같은 시기에 지은 것으로 보고있다.

ㄱ자 형태의 맞배집 건물에 一자형 건물과 2층 건물이 모여 ㅁ자 형태를 이루었으며, 심검당처럼 담장을 두르고 문을 세워 독립적인 공간 형태를 취하였다.

설선당은 스님의 수행 공간이자 생활 공간으로 설계되어 부엌 시설과 함께 2층의 수장고를 갖추고 있다.
순천 선암사 지장전

대웅전과 직교하여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다.

선암사 지장전의 정확한 내력은 확인되지 않으나 임진왜란 이전 선암사의 전각 기록에 따라 조선 초기에는 명부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명부전은 소실되었고, 무독귀왕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조선 인조 22년(1644)에 지장전의 상들이 조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1644년 이전에 지장전으로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지장전은 순조 23년(1823) 화재로 소실되자 이듬해 중창되어 오늘에 이른다.

전각에는 ㄷ자 형태의 불단 위에 지장 삼존상과 시왕 및 권속 등 21구가 봉안되어 있다.
원래는 25구인데 동자 2구와 인왕 2구를 분실하여 21구만 안치되었고, 분실되었던 시왕도 2점(염라대왕도, 변성대왕도)은 인천시립박물관 송암미술관에서 2023년 환부되었다.
지장삼존상

지장보살이 결가부좌하고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의 수인을 하였는데, 왼손에는 있어야 할 보주가 보이지 않아 분실된 것으로 추정한다.
좌우에는 하품중생의 수인을 한 도명존자와 두 손으로 경궤를 받쳐 든 무독귀왕이 협시하며 서 있다.
지장 삼존상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지장탱화로,
지장보살이 결가부좌하고 오른손을 들어 투명 보주를 받쳐 들고 왼손으로 육환장을 쥐었으며,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보살 6위, 팔부중이 반씩 나뉘어 배치되었다.
시왕 및 권속

지장삼존상 좌측에 다섯 분의 시왕과 판관 2구, 녹사, 사자와 함께 시왕도가 안치되어 있고,

우측에도 다섯 분의 시왕과 판관 2구, 녹사, 사자와 함께 시왕도가 안치되어 있다.
순천 선암사 응향각

대웅전 우측에 응향각이 자리하고 있다.

외관상 정면 5칸, 측면 4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보이지만 안쪽으로 전후 한 칸씩 퇴물린 ㄴ자 형태의 건물로 지었으며,

응향각 역시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담장이 둘러져 있다.

건물 바깥쪽에 응향각(凝香閣) 편액이 걸려있고,

건물 우측으로 창살이 설치된 끝 칸에 작은 동종과 대형 금고가 매달려 있는데, 응향각에 거처하던 스님이 예불 시간을 알려주는 용도로 사용했던 법구로 추정된다.
동종은 조선 영조 6년(1730)에 조성된 것으로, 종신에 옹정팔년경술(雍正八年庚戌)이라는 명문이 있으며, 전체 높이 75cm, 윗지름 33cm, 아랫지름 50cm로 크기가 작지만 종 표면에 새긴 문양이 정교하고 수려하다.
상하대에는 당초문을 새겼고, 종의 몸통에는 유곽과 보살 입상을 4면에 배치하였으며, 꼭대기에 음통과 용뉴가 있다.
금고는 직경 100cm에 이르는 대형으로 후면에 건륭오십오년 명문이 있어 정조 13년(1789)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응향각 안에는 1736년에 조성된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조선 후기에 제작된 목조협시보살좌상을 비롯해 석조미륵좌상, 독성상, 나한상 등이 있다.
순천 선암사 보물장

응향각 뒤에 창고 형태의 보물장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재의 도난 방지를 위해 유물들을 응향각에 모아 관리했으나 장소가 협소하여 여의치 않아 응향각 뒤에 있는 창고 건물을 수리하여 보물장이라 하고 임시로 문화재를 보관하여 오다가 범종루 옆 쌍지 중 하나를 메꿔 성보박물관을 지은 뒤 문화재를 모두 이관하고 지금은 비어 있다.

사시예불을 끝낸 스님이 대웅전에서 응향각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상으로 순천 선암사 2부 - 대웅전 영역을 마치고 이어 3부에서는 원통전 영역을 소개합니다.
순천 선암사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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