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보종찰 순천 조계산 송광사 1부에 이어 2부 법당 편을 시작합니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부속 법당인 지장전과 승보전 외에 약사전, 영산전, 응향각, 관음전 등이 법당 공간을 이루었고, 그 외에 응진당과 산신각이 외곽에 배치되었다.

천왕문과 종고루, 대웅전이 한 축을 이루었고,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지장전과 승보전을 배치하고 전면에 종고루를 두어 ㅁ자 형태의 마당을 가진 산지중정형 가람 배치를 하였다.
대웅전

고려 희종 1년(1204) 임금이 조계산 수선사라는 사액을 내렸고, 고려 이후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며 선풍을 드높여 왔던 송광사는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화재와 전란을 겪었고, 특히 6.25 전쟁 때는 사찰이 거의 전소되는 시련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수행자들의 원력으로 도량이 복원되어 현재까지 승보종찰의 위엄을 이어오고 있다.

6.25 전쟁으로 소실된 뒤 1961년에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지은 것을 1988년에 다시 지었다.
정면 5칸, 측면 5칸 건물의 좌우에 정면 1칸, 측면 3칸 규모의 익랑을 붙여 십자형(十字形)의 평면 형식을 한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지었는데, 대웅전을 이와같은 건축 형식으로 한 예는 송광사가 유일할 듯하다.

고주 사이에 후벽을 세워 불단을 조성하고, 불상 위에는 포작을 천장 안으로 밀어 넣은 보개형 닫집을 설치하였으며,

불단 위에는 시방 삼세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좌우에 과거 연등불과 미래 미륵불을 배치한 삼세불과 불상 사이에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을 세워 모두 3불 4보살을 봉안하였다.
석가모니불

중앙의 석가모니불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올려 손바닥이 밖을 향한 시무외여원인의 수인을 하였고,
좌우에는 보관을 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손의 위치만 다를 뿐 같은 모습을 하고 한 손으로 각각 경권(두루마리 경전)과 약사발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천의 자락을 쥐고 대좌 위에 서 있다.
불상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위에서부터 타방불 4구, 팔부중 4구, 용왕과 용녀, 10대 제자, 범천과 제석천 그리고 8대 보살이 반씩 나뉘어 좌우에 배치된 석가모니불도이다.
연등불

석가모니불 좌측에는 과거불인 연등불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전법륜인의 수인을 하였고,
연등불 좌측에는 화불이 있는 보관을 쓴 관음보살이 오른손으로 정병을 잡고 왼손을 들어 연꽃 가지를 쥐고 대좌 위에 서 있다.
불상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연등불을 중심으로 위에서부터 타방불 4구, 4대 제자, 8대 보살, 팔부중 3구, 사천왕 2구가 좌우에 배치되었고, 제불 6구가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그린 연등불도이다.
미륵불

석가모니불 우측에는 미래불인 미륵불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두 손을 다리 위에 올려 선정인의 수인을 하였고,
미륵불 우측에는 두건을 쓰고 머리띠를 두른 지장보살이 왼손으로 보주를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육환장을 쥐고 대좌 위에 서 있다.
불상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미륵불 중심으로 위에서부터 타방불 4구, 4대 제자, 8대 보살, 팔부중 3구, 사천왕 2구가 좌우에 배치되었고, 제불 6구가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그린 미륵불도이다.
사리함

불단 뒤로 돌아가면 불단 밑에 사리를 봉안한 진신사리함이 세워져 있고, 안쪽 벽에는 경판을 조각하여 장엄하였다.
3대 화상

하단에 지공을 가운데로 좌우에 나옹과 무학을 배치한 3대 화상을 그렸고, 상단에는 연꽃 가지를 든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마하가섭존자와 아난존자, 4대 보살, 사천왕을 좌우에 배치하였다.
고승 대덕

화면 중앙에 연꽃을 든 석가모니불을 크게 묘사하고, 좌우에 문수, 보현보살과 마하가섭, 아난존자를 두었으며, 상단에 25 나한을 배열하고, 하단에는 송광사가 배출한 16 국사를 비롯해 9명의 고승 대덕을 표현하였다.
신중탱화

신중단에는 화면 중앙에 예적금강을 크게 표현하고, 좌우에 범천과 제석천 그리고 위태천 동진보살을 배치하였으며, 화면 전체를 호법 신중으로 가득 채운 104위 신중탱화가 걸려있다.
지장전

대웅전 좌측에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다.

지장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규모가 크며, 겹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짓고, 좌우에 풍판이 설치되었으며,

특히 현대식 건축 공법으로 지어 내부에 기둥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확보된 강당 형태를 하였다.
지장보살

주존인 지장보살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보주를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육환장을 쥐었고,
좌우에는 합장한 도명존자와 두 손으로 경궤를 받쳐 든 무독귀왕이 협시하며 서 있다.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지장보살을 가운데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비롯해 시왕, 판관, 녹사, 사자, 옥졸 등을 반씩 나누어 좌우에 배치하고, 상단에는 한 무리의 제불 5구와 세 무리의 제불 6구가 각각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그린 지장시왕탱화이다.
시왕

지장 삼존상 좌측에 5명의 홀수 대왕 및 시자 5구와 함께 뒤에 시왕도가 안치되었고,

지장 삼존상 우측에는 5명의 짝수 대왕 및 시자 5구와 함께 뒤에 시왕도가 안치되었다.

영가단에는 금호 아시아나 그룹 초대 회장 금호 박인천(1901~1984)과 아내 이순정(1910~2010) 여사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1985년 명부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지장전을 세울 때, 비용을 시주한 금호 회장 부부의 위패를 마련한 것이다.
승보전

대웅전 우측에 자리한 승보전은 부처가 영축산에서 10대 제자와 16나한을 비롯해 1,250명의 비구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재현한 전각이다.

6.25 전쟁 이후 1961년 대웅전을 중축하면서 지은 것을 1988년에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식 전각으로 고쳐 지었으며,

송광사가 삼보 사찰 중 승보 사찰임을 의미하는 승보전(僧寶殿) 편액을 걸었다.

어칸 기둥에는 대웅전에도 설치하지 않은 용머리를 삽입하였고,


계단 난간의 소맷돌은 부리부리한 두 눈을 가진 석수가 조각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주고 있다.

송광사 전각의 추녀 끝에는 의레 있어야 할 풍경이 없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스님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어 달지 않았고, 송광사 터가 연화부수형(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이라 무거운 탑이나 석등을 세우면 땅이 가라앉기 때문에 설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송광사에는 탑과 석등, 풍경, 이 세 가지가 없어 3무 사찰이라고도 한다.
송광사와 경쟁사(寺)인 선암사에도 이처럼 몇 가지 없는 것이 있는데, 그 부분은 선암사편에서 살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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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승보전 내부 전경

불단 중앙에 석가모니 삼존불을 봉안하고 앞줄에는 10대 제자를, 좌우 양끝에는 16나한을 배치하였으며, 뒤로 1,250명의 비구를 안치하였다.

석가모니불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선정인을 하고 오른손으로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였고,
좌우에는 마하가섭존자가 깍지 낀 두 손을 가슴까지 들고, 아난존자는 기다란 연꽃 가지를 든 채 서 있다.

승보전 측면에 비사리 구시가 놓여있다.
1724년 전북 남원 세전골에 있던 싸리나무가 태풍으로 쓰러지자 이를 가져와 구시를 만들었는데, 크기가 쌀 7가마에 해당하는 약 4,000명의 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송광사에는 3가지가 없는 반면 3가지 명물이 있는데, 바로 비사리 구시, 능견난사, 쌍향수이다.


수선사 6세 원감 국사가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위로 포개도 맞고 아래로 맞춰도 딱 들어맞는 특이한 그릇을 가지고 왔다.
조선 숙종이 똑같이 만들어 보도록 명했으나, 도저히 만들지 못하자,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만들기는 어렵다는 뜻의 능견난사(能見難思)라 하였다.
이 그릇은 송광사 박물관에 29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1972년에 전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송광사 산내 암자인 천자암에 천연기념물 쌍향수가 있다.
높이 12m, 둘레가 각각 4.1m, 3.3m인 수령 800년 정도의 향나무가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줄기가 배배 꼬여 거의 붙어있다시피 자라고 있으며, 이 때문에 곱향나무라고도 한다.
종고루

대웅전 정면에 종고루가 자리하고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해탈문이 있었는데, 이를 헐고 1962년 정면 3칸, 측면 2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주심포 2층 누각을 지은 뒤, 아래층 가운데는 통로로 사용하고 위층에는 종고루(鐘鼓樓) 편액을 걸고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을 비치하였다.

종고루 앞에서 매화가 꽃을 피웠다.
수선 떨며 화들짝 피는 벚꽃과 달리 죽은 듯 살아있는 나무에 얌전하게 적당히 꽃을 피워,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이래서 옛 선비들이 벚꽃은 쳐다보지도 않고 매화를 탐닉한 모양이다.
사군자에 벚꽃이 아니라 매화가 들어 있는 이유다.
선암사도 매화를 즐겨이 심어 선암매로 유명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관광객을 끌어들일 양으로 벚나무를 경쟁하듯 심는 사찰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송광사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전각인 약사전과 영산전이 강원을 향해 세워져 있다.
보물 순천 송광사 약사전

사방 한 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짓고 창방과 평방을 갖추고 주간포를 2구씩 삽입하였으며, 공포는 외2출목이면서 앙서형 살미를 3개로 하여 장중한 느낌을 준다.
현재 전하는 우리나라 불전 가운데 가장 작은 규모이지만, 기둥이나 평방 등의 부재가 제법 굵은 편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사방 한 칸이기 때문에 대들보는 사용하지 않고 도리와 공포만으로 결구하였는데, 공포를 내3출목으로 하고 네 귀퉁이의 귀살미를 길게 뻗어 천장 한가운데서 서로 마주하여 지붕을 받치고 있다.

불단 위에는 독존의 약사여래불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약함을 받쳐 들고 오른손은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약사불을 가운데로 6대 보살과 12신장을 반씩 나누어 좌우에 배치한 약사여래 후불탱으로 1725년에 제작된 것을 모사하여 걸었다.
보물 순천 송광사 영산전

인조 17년(1639)에 세우고 영조 12년(1736)에 수리한데 이어 1973년에 보수한 영산전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약사전보다 약간 큰 영산전은 창방과 평방을 갖추고 외3출목의 공포를 하였으며, 주간포를 1구씩 삽입하였다.

약사전보더 큰 영산전은 대들보를 두고 우물천장을 가설하였으며, 불단 위에 보개형 닫집을 설치하였다.

독존의 석가모니불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오른손으로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였고,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좌우에 10대 제자, 6대 보살, 범천과 제석천, 타방불 4구, 사천왕, 팔부신장, 청중 등을 그린 영산회상도이다.


본존불 좌우에 팔상도 8폭이 걸려있는데, 원래 있던 영산회상도와 팔상도는 2024년 국보로 지정되어 송광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응향각

대웅전 우측에 응향각이 직교로 세워져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짓고, 응향각, 용왕전, 칠성각, 산신각 편액을 걸었는데,
내부에는 용왕탱화와 산신탱화만 봉안되어 있다.
용왕탱화

일렁이는 물 위에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뿔을 받쳐 든 용왕이 온화한 표정의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양옆에서 용왕을 수호하며 바라보는 두 마리 용과 공양물을 받쳐 든 천동, 천녀가 묘사되었다.
산신탱화

깊은 산중에서 산신이 호랑이와 함께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산신 옆에는 표주박을 매단 지팡이를 쥔 동자와 공양물을 받쳐 든 천녀를 배치하였으며, 한 여인이 산신 앞의 두 마리 새끼 호랑이에게 다가가는 장면을 그렸다.
순천 송광사 관음전

1903년 고종이 성수망육을 맞아 성수전(聖壽殿) 편액을 내리고 황실 기도처로 지은 것을 1957년 관음전으로 바꾸었다.
정2품 이상의 문관 중 70세 이상 된 사람을 우대하는 기로소(耆老所)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대부분 오래 살지 못해 기로소에 들어가는 왕이 없었다.
이에 숙종과 영조는 편법으로 60세를 바라보는 망육순(望六旬)이라 하여 10년을 앞당겨 기로소에 들어갔는데, 고종은 아예 성수망육(聖壽望六)이라 하여 51세에 기로소에 들어갔다.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짓고, 관음전(觀音殿) 편액을 걸었으며,


기둥 위에 뿔이 셋 달린 용을 삽입하였는데, 크고 굵은 이빨과 함께 매섭고 사나운 눈매를 하였고,


관음전 정면 계단의 소맷돌에는 굽이치는 몸통을 한 석수가 뻐드렁니를 드러낸 모습으로 눈을 부라리고 있다.
보물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고주 사이에 칸막이를 설치하여 불단을 조성하고 관음보살을 독존으로 안치하였으며, 관음보살은 하품중생의 수인을 한 채 오른손으로 정병을 쥔 모습으로 결가부좌하고 있다.
관음보살에 복장되어 있던 발원문을 통해 1662년 궁중 나인 노예성이 경안군(소현세자 3남) 내외의 수명 장원(壽命長遠)을 위해 시주하고, 17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조각승 혜희와 금문이 조성한 것이 확인되어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관음보살 뒤로 왕실의 문양인 해와 달이 그려져 있다.

좌우 벽화의 하단에는 문신들이 허리를 굽힌 채 예를 갖추어 불단을 향해 서 있고,

상단에는 화조도, 산수화 등을 그려 넣어 왕실의 원찰 형태를 갖추었다.
이상으로 송광사 2부 법당을 마치고, 3부에서는 수선사를 비롯해 보조 국사 부도 등을 소개합니다.
순천 송광사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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