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는 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조계산에 있으며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
선암사는 고려 이후 지금까지 송광사와 더불어 조계산의 대표적인 사찰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 송광사와 함께 31 본산에 포함되었던 규모 있는 사찰이었으나, 해방 이후 비구승과 대처승의 분규로 인해 선암사 소유권을 두고 조계종과 오랫동안 법적 다툼을 해 왔으며, 2023년에 선암사의 관리 소유 주체가 한국불교 태고종으로 일단락되었다.
순천 선암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해남 대흥사와 함께 7개 사찰로 묶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란 이름으로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백제 성왕 5년(527) 아도 화상이 지금의 비로암 터에 절을 짓고 청량산 해천사라 하였고, 이후 도선 국사가 선암사 자리에 비보사찰을 짓고 청량산 선암사라 한 뒤, 1 철불, 2 보탑, 3 부도를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선암사에 남아 있는 각황전 철조여래좌상(상 좌), 대웅전 서 삼층 석탑(상 중)과 동 삼층 석탑(상 우), 동 승탑(하 좌)과 북 승탑(하 중) 그리고 대각암 승탑(하 우)을 당시의 1 철불 2 보탑 3 부도로 보고 있다.
선암사 중창 내용을 기록한 중창건도기에 따르면, 고려시대 천태종 창시자 대각 국사 의천이 선종 11년(1094) 무렵 선암사에 머물며 사찰을 중창하였는데, 당시 선암사의 규모가 법당 13동, 전각 12동, 요사채 26동 그리고 산내 암자가 19곳이었다고 하였다.
사세가 드높았던 선암사는 정유재란으로 모든 전각이 불에 타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현종 대에 이르러 재건을 시작하였는데, 현종 1년(1660)부터 8년에 걸쳐 경준, 경잠, 문정 스님이 일차 복원하였고 이후 1698년부터 9년간 호암당 약휴 스님이 주석하면서 크게 중창하였다.
그러나 영조 35년(1759)에 발생한 화재로 큰 피해를 입자 이듬해 상월 새봉 스님과 서악 스님이 재건하고, 화재 예방을 위해 이름을 청량산 해천사로 개칭하였다.
하지만 순조 23년(1823) 실화로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동의 건물이 또다시 불에 타자 해붕, 눌암, 익종 스님 등이 중창하여 지금의 가람 모습을 이룬 뒤, 산 이름과 사찰 이름을 조계산 선암사로 바꾸었다.
조선 말기에 호남을 대표하는 함명 태선, 경붕 익운, 경운 원기, 금봉 기림 등 4대 강백을 배출한 선암사는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승려들의 참선 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 계율 전문 교육기관인 율원을 모두 갖춘 태고종 유일의 태고총림을 열고 수많은 스님이 수행 정진하는 수도 도량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선암사는 보물 15점, 전남 유형문화유산 7점, 전남 문화유산자료 3점, 천연기념물 1점, 전남 기념물 1점, 국가민속문화재 1점 등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현재 33점의 문화재가 도난당한 상태이다.

선암사는 규모가 큰 사찰이지만 구역별로 담장이 둘러쳐져 있기 때문에 빠뜨리지 않고 세세하게 관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크게 6 구역으로 나누게 되는데, 진입공간, 대웅전 구역, 원통전 구역, 응진당 구역, 각황전 구역 그리고 요사 구역으로 구분된다.
본 편은 순천 선암사로 들어가는 진입공간을 첫 번째로 소개한다.

예전에는 일주문 앞까지 자동차 진입이 허용되었으나, 탐방객의 안전과 쾌적한 환경을 위해 2021년부터 차량, 자전거, 퀵보드 등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 주차장에서 사찰 입구까지 1.3km 구간을 걸어 들어간다.
1.3km는 제법 먼 길로 생각되는 거리인지라 이런 무더위에는 한시적으로 차량 통제를 풀어줄 줄도 알아야지 어찌 이리도 융통성이 꽉 막힌 사찰인가 했는데, 나무로 뒤덮인 길이 오히려 시원하고, 무엇보다도 승선교와 강선루, 삼인당 등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오히려 사찰의 통제가 고맙기까지 하다.
선암사 부도

주차장에서 400m 정도 올라오면 우측에 탑과 비를 세워 조성한 부도전이 있는데, 백암(1917~1994) 대종사, 남허당 남현(1917~1979) 대종사, 혜초당 덕영(1932~2020) 화상 등 최근에 활동했던 스님들의 승탑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200m 쯤 올라가면 우측에 또 다른 부도전이 나타나는데,


부도전 앞 길 양옆에 조계산 선암사(曹溪山 仙巖寺)와 선교양종대본산(禪敎兩宗大本山)이라 새긴 팻말을 세워 일제강점기 때 조선사찰 선교양종 31본산으로 지정하면서 순천 선암사를 선교양종대본산으로 칭했던 것을 알리고 있다.
31본산 중 27개 사찰에 선교양종대본산이라는 관칭을 붙였는데 우리나라 3보 사찰은 특별히 법찰, 불찰, 승찰이란 명칭을 더해 합천 해인사는 선교양종 법찰대본산, 양산 통도사는 선교양종 불찰대본산, 순천 송광사는 선교양종 승찰대본산이라 하였다.

이곳의 탑비는 대한민국 이전에 활동했던 옛 고승들의 것으로 울타리를 세워 보호하고 있다.

좌측의 석탑 형태를 한 승탑은 화산당 오선(1823~1914) 대사의 사리탑이다.
가장 아래 지대석에는 완자문(卍字紋)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 4마리 사자와 함께 합장한 공양주를 중앙에 세워 기단부를 구성하였고, 사자가 떠받치는 기단갑석의 전면에 연꽃을 조각하고 상단에 난간을 둘러 장식하였으며, 1층 탑신 중앙에 화산대사 사리탑(華山大師舍利塔)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화산 대사 우측은 침명 한성(1801~1876) 대사의 탑비이다.
우측의 상월 새봉(1687~1767) 대사의 비는 해남 대흥사 서산 대사 부도를 향해 방향을 틀어 옆으로 세워져 있다.
18세 때 편양파 월저 도안의 제자 설암 추붕에게 배우고 의발(가사와 바리때)을 전수한 그는 환성 지안, 남악 태우 등 당대의 종장들에게 수학한 뒤, 숙종 39년(1713) 선암사에서 강학에 힘썼으며 임종게를 남기고 선암사에서 입적하자 해남 대둔사(현 대흥사)의 제9대 종사로 추숭되었다.
水流元去海(수류원거해) / 물은 흘러서 다시 바다로 가고
月落不離天(월락불리천) / 달은 떨어져도 하늘을 떠나지 않는다
상월 새봉의 유골을 받들어 묘향산으로 가 초제를 지내려는데, 유골 안에서 사리 3과가 나타나, 하나는 영변 오도산에, 나머지 둘은 순천 선암사와 해남 대흥사에 각각 나누어 승탑을 세워 봉안하고 탑비를 세웠다.

기단부에 두 마리 사자가 조각되었고, 이수에 여러 마리의 용을 새긴 가운데 비는 경붕당 익운(1836~1915) 대종사의 탑비이다.
화산당 오선의 동생인 경붕 익운 스님은 조선 말기 호남의 4대 강백 중 한 분으로, 주위에서는 그를 교가(敎家)의 노호(老虎)라 일컬었으며, 선암사에서 입적하였다.
우측은 그의 대표적인 제자인 율사 경운당 대종사의 탑비이다.
선암사의 대승강원에서 불경을 공부하고, 훗날 직접 강의하며 선암사를 당대 강학의 중심지로 만들었으며, 1896년부터 선암사에서 화엄경을 사경하기 시작하여 6년 만에 완성하였는데, 필적이 매우 뛰어나 그때 쓴 금자법화경의 한 질을 양산 통도사에 보관하고 있다.

부도전을 지나면 길 양옆에 장승이 세워져 있는데, 예전에 나무를 깎아 세운 것을 2018년 화강석을 깎아 다시 세웠다.


좌측은 방생정계(放生定界)라 하여 매인 것들에게 자유를 베푼다는 뜻을 지녔고, 우측은 불법을 수호하고 불자를 보호하는 착한 신이라는 호법선신(護法善神)이다.

부도를 지나면 좌측으로 흐르는 냇물 위에 무지개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예전 같으면 이 다리를 건너 좁은 길을 따라가다 승선교를 다시 건너야 했는데, 지금은 이 다리 앞에서 승선교까지 큰길을 만든 뒤로 더 이상 이 다리를 건너지 않는다.
따라서 굳이 이 다리를 건널 필요는 없지만 옛 정취를 느끼며 승선교까지 가고 싶다면 이 다리를 건너면 된다.
보물 순천 선암사 승선교

새로 만든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다 보면 좀 전에 보았던 다리와 비슷한 다리가 또 하나 나타나는데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와 다리를 보면 처음 보았던 다리보다 훨씬 높고 폭도 넓으며 아름다운 무지개 모양을 한 승선교를 볼 수 있다.

조선 숙종 39년(1713) 호암당 약휴 스님이 6년에 걸쳐 완공한 무지개다리로, 길이 14m, 높이 4.7m, 폭 4m이며,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1698년 호암 스님이 선암사 불사를 시작하기 전 관음보살 친견을 위해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관음보살이 나타나지 않자, 그 기도가 헛되었다 생각하고는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져 죽으려는데, 한 여인이 나타나 스님을 구하고 사라졌다.
스님은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승선교를 세웠다고 한다.

길게 다듬은 돌을 쌓아 빈틈없이 맞물리게 해 다리의 무게를 스스로 지탱하는 반원 형태의 무지개 모양을 하였는데, 다리를 밑에서 올려다보면 둥근 천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 짜임새가 견고하다.
밑에서 다리를 보면 내부 중앙에 튀어나온 돌이 보인다.

다리 한복판에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밑으로 삐죽 내밀고 있는데, 장식의 효과와 함께 악귀로부터 다리를 건너는 중생을 보호한다는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한편으로 이것은 쐐기와 같아 만일 이것을 뽑으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한다.
승선교의 가장 아름다운 면은 바로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에 비친 원형의 승선교 속에 강선루가 들어 앉은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흐르는 물이 부족해 그 모습을 담아내지는 못하였고, 다만 다리를 통해 강선루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순천 조계산은 워낙 풍광이 아름다워 신선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수시로 들락날락하면서 송광사와 선암사에 그 흔적을 숱하게 남겨 놓았다.
송광사의 신선이 산다는 삼청선각, 신선이 건넜다는 삼청교, 등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 신선이 되었다는 우화각이 그러하고,
신선이 커다란 바위 위에서 바둑을 두었다는 뜻을 가진 선암사에는 신선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승선교와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강선루 등을 통해 조계산이 신선들의 휴양지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문인 김극기도 선암사에 가면 마음속 세속의 티끌이 다 없어지고 깨끗해진다며 예찬하였는데, 과연 신선이 놀만큼 풍광이 빼어난 순천 조계산 송광사 선암사 일원은 2009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순천 선암사 강선루

승선교에서 강선루를 향해 걸어가면 보이지 않던 강선루가 암벽을 비집고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강선루는 냇물 위에 중층 누각을 세웠는데, 기둥이 세워진 위치가 아래층과 위층이 다르다.

누각 아래층에 냇물을 건너는 다리를 설치하면서 기둥으로 인해 다리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누각 아래층의 기둥은 세우는 위치에 따라 굵기를 달리하였는데,
누각 모서리의 기둥 4개는 위층과 아래층이 같지만 그 외 아래층 기둥은 가늘게 하여 여러 곳에 세웠다.

누각 아래층에 냇물을 건너는 다리를 설치하였고 선원교(仙源橋)라고 새긴 팻말이 세워져 있다.

원래 누각은 물이 흐르는 냇물 위에 세워져 있어야 하는데 자동차 길을 내면서 우측을 복개하여 반쪽짜리 내(川)가 되었고, 그래서 누각 밑으로 물이 흐르는 장면을 보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편한 만큼 반드시 잃는 것이 있다고 했으니, 넓고 편한 길을 택한 반면 신선이 놀고 갈 만큼 멋졌다는 경관은 없어지고 말았다.

강선루는 냇물 위에 지은 누각이기 때문에 특히 1층의 경우 일반적인 누각과 구조가 다르다.

1층에는 내를 건너는 다리와 함께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2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주심포집을 짓고, 바깥 경치를 조망할 수 있도록 벽체를 쌓지 않고 대신 난간을 둘렀으며,

누각 정면에는 성당 김돈희(1871~1936) 선생이 쓴 강선루(降仙樓) 편액을 걸었고,

후면에는 석촌 윤용구(1853~1939) 선생이 쓴 강선루(降仙樓) 편액을 걸었다.

강선루를 지나면 울창한 삼나무 숲이 나타나고, 숲 끝 언저리에 삼인당이 자리하고 있다.
전남 기념물 순천 선암사 삼인당

타원형 연못 안에 달걀 모양의 둥근 섬이 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삼인당은 신라 경문왕 2년(862) 도선 국사가 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80년 전남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연못 안에 있는 섬은 남을 이롭게 하면서 자기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이고, 바깥의 연못은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우친다는 자각각타(自覺覺他)를 의미하는 것으로, 불교의 대의를 표현하였으며,

불교의 이상을 배경으로 삼인당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삼인은 삼법인을 이르는 말로, 제행무상인, 제법무아인, 열반적정인을 뜻하는데,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은 모든 현상은 시시각각으로 생멸, 변화하여 항상 변천한다는 교리이고,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은 모든 법이 실재하는 것은 아님을 설하는 교리이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은 모든 중생을 적정의 경계에 들게 하기 위하여 열반의 진리를 말하는 교리라고 한다.

삼인당 건너 언덕 위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부터는 말을 타고 가는 자는 모두 내려 걸어가라는 뜻으로, 사찰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갖추라는 의미가 담긴 팻말이다.
보물 순천 선암사 일주문

계단 위에 담장을 설치하고 그 사이에 일주문을 세웠다.
담장 때문에 일주문이 대문의 기능도 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곳에서든 경내로 들어갈 수 있으니 담장과 일주문은 폐쇄성보다는 장식성이 강한 건축물로 볼 수 밖에 없다.
일주문이 언제 세워졌는지 확인되지는 않지만 조선 중종 36년(1540)에 중창한 기록이 있으며, 특히 선암사에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화를 피한 유일한 건축물로, 조선 중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202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일주문은 겹처마 맞배지붕에 다포식 공포를 하였으며, 외4출목, 내2출목에 정면과 후면에는 3구의 공간포를, 좌우 측면에는 1구의 공간포를 설치하여 지붕이 화려하지만 무척 무거워 보인다.

그래서 무거운 지붕을 받치기 위해 보조 기둥을 설치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상부 30cm쯤에서 잘린 채로 남아있다.
아마도 기둥 양편에 설치된 담장이 보조 기둥을 대신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원래 일주문에는 보조 기둥이 있었고, 나중에 담장을 설치하면서 보조 기둥이 필요 없게 되자 잘랐다는 결론에 이른다.
일주문 정면에 조계산 선암사(曹溪山 仙巖寺) 편액이 걸려 있는데,

뒤에는 풍관산인 안택희가 쓴 고 청량산 해천사(古淸凉山 海川寺) 편액이 걸려있다.
편액에 고(古)를 넣어 옛날에 청량산 해천사였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처음엔 청량산 선암사라 했다가 1759년 발생한 화재 이후 청량산 해천사로 바꿨는데, 1823년에 화재를 당한 후 다시 조계산 선암사로 바꾸었다.
선암사의 지형은 강산약수(強山弱水, 산이 강하고 물이 약함) 형으로 화재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풍수지리에 의거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산 이름이나 사찰명을 바꿨으며, 전각 곳곳에 물항아리를 비치하였다.
사실 큰 사찰은 빼먹지 않고 예불 시간을 엄수해 왔는데, 특히 새벽 예불이나 저녁 예불 때는 계절에 따라 어둡기 때문에 그럴 때는 전각 주변에 노주를 설치하여 불을 밝혔고, 그러다 바람이라도 불면 목조 건축에 불이 옮겨붙는 등 화재에 노출된 구조이다.


2001년에 일주문을 보수하면서 주기둥 내측 상부에 용두를 삽입하였는데, 장식성을 겸해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비보책의 일환으로 설치한 것이다.

일주문 정면의 돌계단 소맷돌에 용으로 보이는 석상을 조각하여 설치하였는데 이 또한 벽사의 의미를 둔 비보책으로 보인다.
용은 물을 관장하여 화재를 잡아주는 수신이다. 목조 건물은 화재에 취약하여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상량문에 물의 신인 용과 거북을 함께 적고, 전각에 용을 조각하여 설치하였다.

일주문 좌우에 연결된 담장은 흙과 돌을 섞어 쌓은 뒤에 횟가루로 표면을 마감하고 기와를 올렸는데,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그 위에 얕은 담장을 추가로 올려놓으니, 전체적으로 높은 담장이 되면서 밋밋한 담장이 멋진 담장으로 변하였다.
순천 선암사 범종루

일주문 앞에 범종루를 배치하여 일직선을 이루었다.
사찰의 삼문 배치에 따르면 일주문에 이어 천왕문이 들어서야 맞는데 선암사는 천왕문을 빼고 누각인 범종루를 세웠으며, 그러면서 누각 통로에 천왕문의 기능도 부여하지 않았다.
조계산의 주봉인 장군봉이 사찰을 보호해 준다하여 불교의 호법신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이 필요 없다는 이유로 세우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선암사에 없는 세 가지, 선암사의 3무(三無) 중 그 첫 번째이다.

누각은 1935년에 신축하였는데, 당시에는 누각의 아래층에 아무것도 없이 기둥만 세워져 있었다.
이후 2014년에 벽체를 세우고 불교용품점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짓고, 아래층에는 불교용품점을 위해 좌측에 반 칸을 늘리고 기와를 얹었으며, 윗층에는 겹처마 팔작지붕의 주심포집을 세우고 범종 3개와 법고 및 목어 등을 비치하였다.

때마침 스님이 누각에 올라와 사시 예불을 드리며 타종하고 있다.

누각 2층에는 범종루(梵鐘樓) 편액이 걸려있고,
그 아래 목인 전종주(1951~) 선생이 쓴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太古叢林 曹溪山 仙巖寺) 편액을 걸어 이곳이 태고총림임을 알리고 있다.
선암사 태고총림은 승려들의 참선 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 그리고 염불원을 모두 갖추었으며, 태고종에서는 선암사 태고총림이 유일하다.

범종루 외에 범종각이 별도로 조성되어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 사모지붕을 올린 주심포집으로 짓고 지붕 중앙에 절병통을 올려 놓았다.

하루 세 번 예불 의식을 하기 전에 타종하여 예불 시간을 알리고 있다.
보물 순천 선암사 동종


좌측의 동종은 1657년에 보성 대원사 부도암의 종으로 주성한 것으로, 종신의 비례가 적당하고 안정감이 있으며 문양도 섬세하고 뛰어나 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종 고리는 두 마리 용이 각기 한 발을 들어 보주를 받쳐 든 모습의 쌍용뉴로 하였고, 범자가 장식된 천판의 복련 문대, 상, 하대의 범자 문대와 연화 문대, 정연한 연곽과 연화당초 문대, 제석과 범천상, 왕실 안녕 발원의 전패 등 세부 표현이 훌륭하다.
우측의 동종은 높이가 120cm에 이르는 비교적 큰 종으로, 종신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강희 39년(1700) 조계산 선암사 대종으로 800근의 중량을 들여 개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8세기에 활동했던 김상립과 그의 아들 등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어 당시 김상립을 중심으로 한 사장계의 활동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이 종은 쌍룡뉴와 연곽대, 보살상과 왕실 안녕을 기원하는 문구가 담긴 전패 등 각 부의 문양이 섬세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형성을 잘 갖추었다.
두 종 모두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상으로 순천 선암사 1부 - 진입공간을 마치고 이어 2부에서는 대웅전 영역을 소개합니다.
순천 선암사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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