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조계산에 자리한 송광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이다.
불(佛), 법(法), 승(僧) 이 세 가지를 삼보(三寶)라고 하는데, 금강계단이 있는 양산 통도사를 불보 사찰, 팔만대장경 경판이 있는 합천 해인사는 법보 사찰, 한국 불교의 승맥(僧脈)을 잇고 있는 송광사는 승보 사찰이라 한다.
한편, 승려들의 참선 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 그 외 염불원을 갖춘 사찰을 총림이라고 하는데, 2025년 현재 순천 송광사 조계총림은 합천 해인사 해인 총림, 양산 통도사 영축 총림, 예산 수덕사 덕숭 총림, 대구 동화사 팔공 총림과 함께 5대 총림 중 하나이다.
송광사는 신라 말 8세기경에 혜린 선사가 처음으로 창건하고 길상사라 하였다.
이후 고려 명종 27년(1197)에 천진과 확조 두 스님이 중창한 것을 3년 뒤인 신종 3년(1200) 보조 국사 지눌이 절 이름을 정혜사(定慧社)로 고치고, 이곳에 주석하였으며, 희종 원년(1204)에 임금이 산 이름을 조계(曹溪), 절 이름을 수선(修禪)이라 친필로 사액하였다.
흥망성쇠라 하여 흥이 있으면 망이 따르고, 성과 쇠가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에 따른 듯, 고려 때 융성했던 수선사는 쇠퇴하였고, 이에 조선 정종 때 고봉 화상이 중창하기 시작하여 중인 선사가 완성하여 겨우 회복하는가 했더니 정유재란 때 왜놈이 침입하여 전각이 소실되었다.
왜란이 끝난 뒤, 1606년 응선 화상이 다시 중건한 송광사는 수선(修禪)과 교학(敎學)의 대선방과 대강당이 되어 수많은 고승 대덕이 주석하면서 선풍(禪風)을 날리며 명실공히 대찰로써 그 위세가 드높았는데,
6.25 전쟁을 겪으면서 전각은 물론 수백 년간 보존해 왔던 보조 국사 지눌의 가사를 비롯한 많은 성보가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이후 1955년부터 전각을 복구하기 시작하였고, 1969년 조계 총림을 설립하면서 승보 종찰로서의 위용을 갖추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송광사는 1984년 명승으로 지정되었으며, 유물로는 국보 6점, 보물 46점, 유형문화유산 9점, 국가등록문화유산 2점 등이 있다.
청량각

주차장에서 경내로 걸어가다 보면 송광사 입구 계곡을 따라 흐르는 계류 위에 전각이 세워져 있다.

물 위에 무지개다리(홍교)를 세우고 그 위에 전각을 조성하였는데, 전각 안에서 계류를 구경할 수 있도록 4면을 벽체 없이 개방하였으며, 정면보다 폭이 좁은 측면을 입구로 하고,

측면에 청량각(淸凉閣) 편액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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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가운데에 설치한 귀틀을 따라 연꽃과 함께 용이 지나가고 있다.

하마비를 지나쳐 가면 송광사 법당으로 가는 길이고, 뒤로 난 길을 따라가면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1932~2010) 스님이 1970년대 중반에 손수 이곳에 암자를 짓고 홀로 지냈던 불일암이 나온다.
경내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우측 언덕에 역대 고승들의 탑비가 빼곡하게 숲을 이루는 비림(碑林)이 조성되어 있다.

순천 송광사 앞을 흐르는 신평천은 송광사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데 일조하는 계류로, 삼청교와 우화각을 비롯해 임경당과 침계루가 냇가를 끼고 줄지어 세워져 있다.

경내로 들어서기 위해선 일주문을 지나 우화각을 통해 신평천을 건너야 하는데 급한 사람들은 일주문 못미처 천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징검다리를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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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순천 송광사 조계문

일주문이 담장 사이에서 지붕을 높게 하여 위용을 갖추고 서 있다.

일주문이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주문 중수 기록에 따르면, 고려 충선왕 복위 2년(1310), 조선 세조 10년(1464), 숙종 2년(1676), 순조 2년(1802)에 이어 1977년과 2007년에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주문 정면에 조계산 대승선종 송광사(曺溪山大乘禪宗 松廣寺)라고 적힌 푸른색 편액이 세로로 걸렸고, 내부에는 용두 뒤로 승보종찰 조계총림(僧寶宗刹曺溪叢)이라고 적힌 편액이 가로로 길게 걸려있는데,
푸른색 현판 뒤에 건륭17년이라고 적힌 묵서를 통해 영조 28년(1752)에 편액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고,
특히 순조 2년(1802)에 쓴 순천 송광사 조계문의 사중창기에 조계문이라고 기록된 것을 근거로, 이 일주문의 이름을 조계문(曺溪門)이라고 한다.

정면 1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을 하고 외4출목의 공포로 짜올렸는데, 정면과 후면에는 주간포를 3구씩, 측면에는 주간포를 각각 1구씩 배열하고, 네 귀에 귀포를 두어, 총 12구의 공포를 조밀하게 올려 무척 화려하다.
지붕의 측면에 풍판이 설치되어 있으나 풍판의 아래 부분을 짧고 직선으로 처리하여 측면에 결구한 공포가 잘 드러난다.

헌종 8년(1842)에 발생한 큰 화재로 송광사의 대부분 전각이 소실되었을 때 조계문은 화마에서 살아남아 원형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면서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일주문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건축사적 편년 자료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고, 조선 후기 건축양식의 시대성과 지역성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평가되어 202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일주문 정면 계단 소맷돌 끝에 사자상을 세웠는데, 마모가 심해 형상을 알아보기가 쉽지는 않지만 동글동글한 머리를 하고 엉덩이를 깔고 앉은 모습이 무척 익살스럽고 친밀하게 보인다.
고향수

일주문을 들어서면 고목 한 그루가 서 있는데 고향수(枯香樹)라고 한다.
보조 국사 지눌(1158~1210)이 송광사에 처음 와 자신의 지팡이를 꽂으며 시를 남겼다.
爾我同生死(이아동생사) / 너와 나는 같이 살고 죽으니
我謝爾亦然(아사이역연) / 내가 떠날 때 너도 떠나고
會看爾青葉(회간이청엽) / 너의 푸른 잎을 다시 보게 되면
方知我亦然(방지아역연) / 나도 그런 줄 알리라
그 뒤 지팡이에서 잎이 피어 자라기 시작하였는데, 지눌이 입적하자 향나무도 따라서 말라버리기에 고향수라 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푸른 잎을 기다리고 있지만 800여 년이 지나도록 아직 잎 소식은 없다.
관욕처

고향수 위에 망자의 영혼이 속세의 때를 벗는 관욕처가 담장 안에 자리하고 있다.

사방 한 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을 한 작은 전각이 서로 직교하여 세워져 있는데, 좌측 세월각(洗月閣)은 여자 영가의 관욕처이고 우측 척주당(滌珠堂)은 남자 영가의 관욕처이다.

전각 내부는 비어 있고, 관욕을 할 때 영가의 위패를 안치한다.
전남 유형문화유산 순천 송광사 삼청교, 우화각

삼청교 및 우화각은 법당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다리와 그 위에 세운 건물로 1976년 전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법당으로 들어가는 삼청교는 숙종 33년(1707)에 처음 만들었고, 영조 50년(1774) 보수를 한 무지개다리(홍교)이다.
삼청교를 능허교라고도 하는데, 능허교의 능(凌)은 능가하다, 초월하다의 뜻이고, 허(虛)는 비다라는 뜻으로 곧, 빈 것마저도 넘어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능허교는 불교의 근본 사상을 상징적으로 담은 다리의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삼청교(능허교)의 다리 중앙에 용이 머리를 내밀고 물을 내려다 보고 있다.

우화각은 삼청교 위에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주심포집으로 세우고 벽체 없이 개방하였으며, 신평천을 향한 정면에 우화각(羽化閣) 편액을 걸었다.
한편, 우화루의 우화가 雨花가 아니라 羽化이다.
우화루(雨花樓)의 우화는 석가모니불이 설법할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는데서 유래하였지만,
우화각(羽化閣)의 우화는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 신선(神仙)이 되었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에서 유래되었다.
신선 사상이 충만한 전각으로 순천 조계산 선암사의 승천교, 강선루 등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측면을 입구 삼아 들어가는 구조이며, 팔작지붕이 올려져 있고,

나가는 쪽은 대문이 달려있고, 지붕은 천왕문과의 간섭으로 맞배지붕을 하였다.

또한 주심포집임에도 측면 입구에 주간포 1구가 삽입되었고, 그 밑에 용두를 끼워 장엄하였다.

내부 천장에는 해강 김규진(1868~1933) 선생이 쓴 송광사(松廣寺) 편액이 걸려있고,

천장 중앙에 귀틀을 설치하여 판장을 대고 구름과 학 등을 그려 넣고, 대들보에 용을 조각한 충량을 걸쳐 장엄하였으며,


창방과 장여 사이에 삽입된 화반은 귀면이나 코끼리 등으로 조각하여 삽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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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순천 송광사 천왕문

우화각을 통과하면 정면에 천왕문은 자리하였고, 사천왕문(四天王門) 편액을 걸었다.

천왕문은 광해군 1년(1612) 정면 3칸, 측면 2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중창한 것인데, 조선 중기의 건축적 특징을 보이고 있어 학술적 연구 가치가 높아 202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보물 순천 송광사 사천왕상
천왕문 안에 안치된 사천왕상은 조선 인조 6년(1628)에 제작된 것으로,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천왕문을 들어서서 우측에는 비파를 연주하는 북방 다문천왕과 검을 든 동방 지국천왕이 배치되었고,

맞은편에는 용을 붙잡고 여의주를 쥔 남방 증장천왕과 삼지창을 쥔 서방 광목천왕이 배치되었다.
임경당

우화각 좌측에 임경당이 자리하고 있다.

여러 개의 전각을 이어 붙여 ㅁ자 형태를 구성한 임경당은 신평천 쪽으로 돌출된 누각을 짓고,

좌측에는 삼청선각(三清僊閣), 우측에는 육감정(六鑑亭) 편액을 걸었다.

삼청은 태청(太淸), 상청(上淸), 옥청(玉淸) 혹은 태청, 중청, 하청이라 하여 선인들이 머무는 하늘에 있는 신선의 나라를 의미하며, 삼청선각은 삼청(三淸)에 신선 선(僊)을 더해 부른 말로 신선이 사는 곳을 뜻하고,
육감정은 여섯 거울의 정자라는 뜻으로, 누각에서 내려다 볼 때 물에 비치는 여섯 가지 형상인 하늘, 해, 달, 별, 구름, 바람을 의미하는데 삼청선각이나 육감정 둘 다 도교의 신선 사상이 엿보이는 편액이다.

임경당은 맞배지붕의 건물 4채를 ㅁ자 형태로 이어 붙이고 출입을 위한 작은 쪽문을 하나 내고 임경당(臨鏡堂) 편액을 걸었다.
사자루

우화각 우측에 사자루가 자리하고 있다.
신평천에 돌을 쌓아 조성한 기단 위에 기둥을 세우고 지은 사자루는 원래 침계루였으나 구산 스님이 1978년 사자루라 이름하고 송광사 수련대회를 거행하면서 사자루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사자루 뒤로 법성료, 정혜사 등의 전각이 배치된 이곳은 승가대학인 강원으로,

담장 사이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문을 세우고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 불교전문강원 현판을 걸었다.
이상으로 송광사 1부 송광사를 대표하는 풍광이 아름다운 신평천 우화각을 마치고, 2부에서는 법당을 소개합니다.
순천 송광사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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