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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태고총림 순천 조계산 선암사 3부 - 원통전 영역 / 원통전, 팔상전, 불조전, 조사전, 첨성각, 장경각, 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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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총림 순천 조계산 선암사 2부 대웅전 영역에 이어 3부 원통전 영역을 시작합니다.

 

조선 숙종 때 호암당 약효(1664~1738) 스님이 관음보살 친견을 위해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관음보살이 나타나지 않자, 그 기도가 헛되었다 생각하고 낙심하여 벼랑에 몸을 던져 죽으려는데, 한 여인이 나타나 스님을 구하고 사라졌다.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달은 스님은 숙종 23년(1697) 관음보살 1구를 조성하고 이듬해 원통전을 완공하였다.

호암 스님은 1689년부터 1702년에 원통전과 불조전을 세워 관음보살상과 55불상을 봉안하고 승선교를 건립하는 등 정유재란 때 소실된 선암사를 복원하기 위해 모든 공력을 다 했으며 이런 이유로 선암사 수호자(護巖子)로 불렸다. 그뿐 아니라 무너진 승풍(僧風)을 진작시키기 위해 도승통제를 실시하고 당나라 백장 스님이 선종의 의식과 규율을 정한 백장청규(百丈淸規)에 버금가는 규율을 제정해 실행하였다.

원통전 영역은 세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원통전과 원통전을 관리하는 스님이 거처하는 첨성각이 원통전 영역의 중심을 이루고,

팔상전, 불조전, 조사전과 이 전각을 관리하는 스님의 처소로 사용하는 삼전이 한 부분을 구성하며

외곽에 경전을 보관하는 장경각이 있다.

 

전남 유형문화유산 순천 선암사 팔상전

매화나무로 조성한 화단 뒤에 터를 높이고 그 위에 팔상전, 불조전, 조사전 등 세 전각을 일(一)자 형태로 배치하였다.

정유재란(1597) 때 대부분 불타 없어진 것을 숙종 33년(1707) 약효 대사가 중수하였는데, 순조 23년(1823) 화재로 불에 타자 이듬해 해봉, 눌암 두 스님이 다시 지은 것으로, 1976년 전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팔상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후면은 익공 양식의 주심포 형태가 분명한데 

정면은 후면과 형태가 다른 이익공 양식의 주심포 형식을 취하였다.

순조 때 재건하면서 주심포 계통을 유지하되 정면만 외1출목 형태의 공포를 올려 당시의 유행 양식인 다포 형식을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부분으로 나눠 그린 팔상도를 모신 전각인데, 전각 안에는 팔상도 외에 불상과 후불탱화 그리고 조사도(나한도)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불단에 봉안된 불상은 크고 작은 아미타불 10구와 석가모니불 1구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팔상전에는 팔상도만 봉안하는 것이 원칙이나 원불로 조성된 불상을 봉안할 곳이 여의치 않자, 이곳에 봉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천장은 판장으로 가설되었는데, 후불탱화인 화엄경변상도가 자리한 곳의 천장은 안으로 밀어 넣고 우물천장으로 조성한 뒤, 반자청판에 범자를 그려 넣었다.

 

순천 선암사 화엄경변상도

전각 중앙에 벽체를 세우고 설치한 후불탱화는 화엄경변상도이다.

 

원래 조선 정조 4년(1780)에 제작된 진품이 있었으나 조계종과 소유권 다툼이 한창이던 1999년에 도난당했고, 현재 걸려있는 불화는 복제품이다.

화엄경변상도는 화엄경을 7곳에서 9번 설법한 칠처구회(七處九會)의 장면을 한 폭에 그린 그림이다.

위아래 2단으로 구성된 상단은 하늘의 4곳에서 한 번씩 4번의 설법 장면이 묘사되었고,

 

그 아래 하단은 지상의 3곳에서 모두 5번의 설법 장면을 표현하였으며, 그 사이에 구름과 수많은 분신불을 복잡하게 묘사하였는데, 질서가 정연하다.

불상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화면의 가장 아래에는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순천 선암사 팔상도

원래 1753년에 제작된 팔상도가 걸려있었으나 모두 도난당했다가 2006년 두 점만 회수되어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고, 2018년에 다시 제작한 팔상도를 좌우에 4폭씩 여덟 폭 걸었다.

화엄경변상도 좌측에 걸려있는 4폭은 우측부터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도솔래의상, 룸비니 동산에 내려와서 탄생하는 비람강생상, 사문에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사문유관상, 성을 넘어가서 출가하는 유성출가상이고,

우측에 걸려있는 4폭은 우측부터 설산에서 수도하는 설산수도상,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수하항마상, 녹야원에서 처음 포교하는 녹야전법상,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쌍림열반상이다.

보물 순천 선암사 33조사도

조선 영조 29년(1753)에 은기를 비롯한 5명의 승려가 조당집에 근거하여 가섭존자부터 중국의 육조 혜능 스님까지 33명의 조사를 11폭으로 나누어 그린 선종 33조사도이며, 현존하는 유일한 33선종조사도라는 희귀성과 함께 도상의 구성 방식과 필치 등이 뛰어나 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석가모니불은 배 부분에 두 손을 모으고 결가부좌하였으며, 좌측의 마하가섭존자는 지팡이를 어깨에 걸친 채 구부정한 모습으로 서 있고 우측의 아난존자는 여의를 쥐고 꼿꼿한 자세로 서 있다.

여기에 묘사된 33조사의 도상은 중국 명대의 화보인 삼재도회(三才圖會), 홍씨선불기종(洪氏仙佛奇蹤)을 모본으로 하고 있어 조선 후기 화보의 전래와 불화 도상 간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중요하다.

 한 화폭에 3~4명의 조사를 그렸으며, 제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앉아 있거나 서 있다.

33조사도는 원래 총 11폭으로 조성되었으나 현재 7폭만 남아 있으며, 

진품은 선암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고, 팔상전에는 영인본을 걸었다.

 

전남 유형문화유산 순천 선암사 불조전

불조전 상량기에 조선 영조 35년(1759)에 화재로 탄 것을 영조 37년(1761)에 중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지었는데, 팔상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주심포 계통을 유지하되 사면을 1출목 2익공 형태의 공포를 적용한 사례로 인정되어 2008년 전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불조전(佛祖殿)은 과거칠불에 미래현겁천불의 불조인 53불을 더해 모두 60불을 모신 전각이다.

부처의 계보에 따라 조선 숙종 28년(1702)에 불화와 함께 목조로 불상 60구를 조성하였는데, 그중 4구를 도난당해 새로 조성했으며, 불화 역시 2폭을 도난당했다가 다시 환수되었다.

 

53 불상과 불화는 우리나라에 선암사와 송광사 단 두 곳뿐이데, 선암사(1702년 제작)가 송광사(1725년 제작)보다 조금 빨리 조성되었으며, 선암사는 목조 불상으로, 송광사 불상은 소조 불상으로 제작되었다.

 

과거칠불

불단 중앙에 과거칠불 불화와 목조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과거칠불이란 비바시, 시기, 비사부, 구류손, 구나함모니, 가섭 그리고 마지막 부처인 석가모니불을 이른다.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두고 좌우에 3불씩 6불이 협시하듯 배치하여 과거칠불을 구성하였다.

뒤에 걸려있는 불화는 중앙의 석가모니불과 함께 좌우에 6불이 배치된 칠불도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사상에 따라 천불, 삼천불과 같은 다불 사상이 생겼는데, 이때 법의 계승을 상징하는 부처의 계보를 만들어 법맥의 흐름을 형상화한 것이 53불이다.

 

하필 53 숫자가 된 것은 선재동자가 찾아 헤맨 53명의 선지식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불상 뒤에 6폭으로 나눠 그린 53불도가 걸려있다.

과거칠불 좌측에 26불상을 안치하고 불상 뒤에 3폭으로 각각 11불, 8불, 7불 등 모두 26불을 그렸고,

우측에 27불상을 안치하고 불상 뒤에 3폭의 불화에 각각 11불, 8불, 8불 모두 27불을 그렸다.

좌우 양끝에 걸려있는 2폭은 1998년 도난당했다가 2014년 손상된 상태로 회수되어 대체품을 걸었다.

 

순천 선암사 조사전

팔상전, 불조전에 이어 마지막으로 조사전이 자리하고 있다.

사방 한 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지었는데 정면 크기가 측면에 비해 월등히 넓다.

전각에 조사당(祖師堂) 편액을 걸고 일곱 분의 조사 진영을 봉안하였다.

전각 중앙에 선종을 창시한 서천 28대 조사 달마 대사를 두고 좌측에는 당토 선종 육조 대감 혜능 대사를, 우측에는 임제종의 창시자 6조 조계하 5세 임제 의현 선사 진영을 배치하였고,

좌측 벽에는 임제종 양기파를 개창한 임제하 7세 적전(嫡傳) 양기방회 선사(좌)와 임제하 18세 적손(嫡孫) 석옥 청공 선사(우) 진영을 걸었으며,

우측 벽에는 임제 18대 적전(嫡傳) 석옥 청공 사(嗣) 해동 초조 태고 보우 화상(우)과 침굉당 대선사(좌)의 진영이 걸려있다.

 

침굉당 현변(1616~1684) 대선사의 상좌가 조선 숙종 때 선암사를 중창한 호암당 약효(1664~1738) 스님이다.

 

보물 대각국사 의천 / 선각국사 도선 진영

대각국사 의천의 영정(좌)은 도일 스님이 기존의 진영을 순조 5년(1805)에 수정, 보완한 것인데, 예운 혜근(19세기 말~20세기 전반 활동)의 글씨가 남아있어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1990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선각국사 도선의 영정은 도일 스님이 대각국사 의천의 진영과 함께 보수한 것으로, 현존하는 고승 진영 가운데 비교적 조성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으로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순천 선암사 삼전

팔상전 향 우측에 요사 삼전이 자리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을 올린 직질 익공의 주심포집으로 짓고,

삼전(三殿)이라고 쓴 편액을 걸었는데, 삼전이란 팔상전, 불조전, 조사전을 일컫는 말로, 이들 전각에 예불하는 스님이 거처하는 곳이다.

 

전남 유형문화유산 순천 선암사 원통전

원통전은 조선 숙종 24년(1698) 호암 대사가 지은 것을 순조 24년(1824)에 다시 지었으며, 건물 정면에 기둥 2개를 설치하고 지붕을 올려 건물 평면이 丁(정)자 형을 이루는 독특한 형태의 건물로 1990년 전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지었으며, 외벽을 회벽으로 마감하여 엄숙하고 정연한 분위기를 띠고 있으나, 가구 수법이나 창방 위에 올려 놓은 화반 등의 조각이 화려하다.

조선 정조 13년(1789) 눌암 대사가 이곳 원통전에서 정조의 후사를 위한 100일 기도를 하여 훗날 순조를 얻었다고 한다.

 

왕위에 오른 순조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인(人), 천(天), 대복전(大福田)이라는 친필 현판과 은향로, 쌍용문가사, 금병풍, 가마 등을 선암사에 하사하였고 이후 1823년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원통전을 다시 지었다.

 

관음보살

전각 중앙에 방을 만들어 불단을 조성하고 관음보살을 안치하였다.

불단 정면은 개방되었으나 측면은 반을 막고 반은 개방된 형태를 하였고,

좌우 측면의 막은 부분에는 문틀을 짜고 외짝 문을 설치하였는데, 꽃을 세밀하게 조각하였고 하단 궁창에는 태극 문양을 그렸다.

화문과 화염문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보관을 쓴 관음보살이 결가부좌하고 하품중생의 수인을 하였으며,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정병을 오른쪽 다리 위에 올려놓고 정병에 꽂힌 나뭇가지를 오른손 엄지와 중지로 쥔 모습을하고 있다.

 

신중탱화

원통전에 신중탱화 2점이 걸려있다.

상단에 연꽃을 든 범천과 제석천을 두고 중앙에 위태천 동진보살을 표현하고, 주위에 권속 13위를 배치한 탱화와

연꽃을 든 범천과 제석천을 상단에 두고 중앙에 위태천 동진보살을 표현하고, 주위에 33위의 권속을 배치한 탱화이다.

 

순천 선암사 첨성각

원통전 옆에 원통전 예불을 담당하는 스님이 거처하는 요사 첨성각이 자리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짓고, 가운데 두 칸은 반 칸 뒤로 물려 툇마루를 설치하였으며,

학정 이돈흥(1947~2020) 선생이 신사년(2001)에 쓴  첨성각(瞻星閣) 편액을 걸었다.

첨성각 글씨 중 성(星)은 원래 生(생) 위에 日(일)이 하나인데, 편액에는 生 위에 日을 세 개나 올려 써서 독특하면서도 독창적인 글자로 만들었다.

첨성각 뒤로 담장을 두르고 높은 문을 세웠으며,

문 앞에 돌을 쌓아 사각형을 형태를 한 작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좌측으로 석축 위에 담장을 치고 문을 세워 원통전 영역과 응진당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선암사는 법당마다 담장을 세워 영역 구분을 확실히 하였는데, 조선 후기 사찰 건축 구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순천 선암사 장경각

원통전 담장 밖에 자리한 장경각은 원래 1796년 정조가 왕자 탄생 발원기도를 올린 눌암 선사에게 첩지와 어필을 내리면서 왕실 원당으로 지정된 축성전이었으나 지금은 목판을 보관하는 전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지었으며,

염재 송태회(1872~1942) 선생이 쓴 장경각(藏經閣) 편액을 걸었다.

선암사 전각의 어칸 기둥에 용두가 삽입된 곳은 대웅전 하나뿐인데 그나마도 작은 크기이며, 선암사 전각 중에 이처럼 큰 용두가 삽입된 곳은 장경각이 유일하다.

전각 중앙의 고주 사이에 불단을 조성하였고,

불단 좌우에는  목판을 보관한 철재 자바라가 비치되어 있다.

 

불단

독존의 비로자나불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싼 지권인의 수인을 하였고,

불상 뒤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 보현보살이 협시하며 서 있는 모습을 그린 5폭 병풍을 둘렀다.

 

​병풍 위로 3면에 소상팔경도가 그려져 있고, 그 밑에는 배례도가 그려져 있는데 배례도는 병풍으로 가려져 있어 확인되지 않는다.

배례도는 문무백관들이 왕실 의례에 직접 참여하여 배례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순천 송광사 관음전 벽화를 참조하면 될 듯 싶다.

 

호작도 / 운룡도

소상팔경도 아래 좌우 벽 하단에는 왕실 공간을 외호하는 호작도(호랑이와 까치 그림)와 운룡도(구름 속의 용)가 그려져 있다.

이러한 벽화를 통해 장경각이 조선 말기 왕실의 원당인 축성전이었음을 확인시키고 있다.

장경각 앞에 삼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왕실 원당인 축성전은 원래 솟을삼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러 독립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장경각으로 바꾸면서 삼문과 담장을 헐어냈고, 자금은 삼나무가 솟을삼문을 대신하고 있다.

 

이상으로 순천 선암사 3부 - 원통전 영역을 마치고 이어 4부에서는 응진당 영역을 소개합니다.

 

순천 선암사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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