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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경주 천경림 흥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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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사정동에 흥륜사가 자리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흥륜사는 고구려 승려 아도가 미추왕의 허락하에 지은 신라 최초의 사찰이며 미추왕이 죽은 뒤 폐사되었다가 법흥왕 14년(527) 이차돈이 순교하자 왕이 불교를 공인하고 천경림을 벌채하여 절을 짓게 하였으며, 진흥왕 5년(544)에 절을 완성하고 대왕흥륜사라하였다고 서술하였다.

 

이후 신라 말기 반란군에 의해 파괴된 것을 경명왕 5년(921)에 중수하였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화재로 전소되어 폐사되었다가 1980년대에 다시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 때 이곳에서 신라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기와 수막새가 출토되었는데, 당시 경주 사람들이 이 일대를 흥륜원으로 부르는 것을 근거로 흥륜사지로 부르게 되었고 이후 1963년 이곳을 흥륜사지로 보고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1932년 경주 사정리 절터에서 독특한 와당(瓦當) 한 점이 발견되었는데, 이 기왓조각은 지붕의 기왓골 끝에 사용하는 수막새로, 독특한 웃음기를 띈 모습이 표현되어 있어 신라의 미소로 널리 알려졌으며 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수막새는 1934년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가 골동품점에서 매입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72년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되어 반환되었으며, 이마, 두 눈, 오뚝한 코, 잔잔한 미소와 두 뺨의 턱선이 조화를 이루어 높은 예술적 경지와 함께 우수한 제작 기술과 아름다움이 돋보여 201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2023년 흥륜사 경내 흥륜사터로 추정하는 곳을 발굴 조사한 결과, 신라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사용된 금당의 기단이 드러났는데,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이때 영묘지사(靈廟之寺)와 대령묘사조와(大令妙寺造瓦) 등이 새겨진 기와 조각이 출토되어 경주 흥륜사지로 지정된 이곳이 원래 선덕여왕 4년(635)에 창건된 영묘사지로 보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또한 흥륜사지 서쪽 하수관로에서 철솥이 발굴되었는데, 철솥 안에는 향로, 향완, 촛대, 접시, 금강령, 금강저 등 정교하게 제작된 불교 의례 도구를 비롯해 석회, 보리, 벼, 조, 기장, 밀, 콩 등 곡물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이를 통해 이 유물은 단순한 매장이 아닌 특별한 매납 행위로 땅에 묻힌 것으로, 몽골군의 침략이나 화재를 대비해 급히 한 곳에 모아 땅에 묻은 퇴장 유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출처: 경향신문

편, 2008년 경주공업고등학교 운동장 배수구 공사 중, 흥(興)이 새겨진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으며, 흥(興) 글자 위아래에도 글자 일부가 남아 있는데, 흥(興) 위에는 왕(王)의 일부이고, 아래는 륜(輪)의 일부로 추정하며, 이를 근거로 ~王興輪~ 를 유추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서 진흥왕이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를 완성시킨 뒤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는 현판을 내렸다는 기록과 함께 이 기왓조각을 근거로 지금까지 알려진 흥륜사지는 영묘사지이고 흥륜사지는 이곳에서 1km 떨어진 경주공업고등학교로 보고 있다.

흥륜사 뒤편 담장에 흥륜사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안내문의 모든 내용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토대로 작성되었지만, 영묘사 명문이 새겨진 기와편 등의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흥륜사지의 위치를 다시 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안내문 옆에 천경림 흥륜사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천경림(天鏡林)은 경주 남천이 빈번하게 범람하자 방조를 비롯해 방수와 방풍 등을 목적으로 조성한 숲이며, 불교가 들어오기 전 고대 신앙의 성지 또는 토착 신앙의 성소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구려 승려 아도의 어머니가 아도에게 이르기를 계림(신라)의 서울에 7곳의 절터가 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천경림이라 하였다. 계림에 온 아도는 미추왕의 딸 성국 공주의 병을 치료한 뒤 왕의 허락을 얻어 천경림에 절을 창건하였지만 미추왕이 죽자 절은 폐사되었다.

 

이후 법흥왕 14년(527) 이차돈의 순교와 함께 왕이 천경림을 벌채하여 그 목재로 절을 짓게 하였으며, 진흥왕 5년(544)에 완성하고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 하였다고 한다.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2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을 올린 다포식 건물로 짓고 대웅전(大雄殿) 편액을 걸었으며,

전각 내부에는 십(十)자 형태의 보궁형 닫집으로 장엄하고 화려하게 조각된 수미단 위에 아미타 삼존불과 함께 후불탱화를 봉안하였으며 좌우에 지장시왕탱화와 칠성탱화를 비롯해 신중탱화를 걸었다.

 

아미타 삼존불

불단 중앙에 주불인 아미타불이 통견 차림으로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오른손은 들고 왼손의 손등을 다리 위에 붙인 자세로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또는 중품하생)의 수인을 하였고,

 

좌측의 관음보살은 관은 쓰고 양어깨를 감싼 통견 차림으로 결가부좌한 채 왼손은 다리 위에 올려 손 끝을 땅으로 향하고 오른손의 손등을 다리 위에 올려 놓고 정병을 받쳐 들었으며,

 

우측의 대세지보살은 관음보살과 같은 모습이나 손의 위치만 달리하여 금강저를 쥐고 있다.

 

영산회상도

아미타 삼존불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로,

 

화면 중앙에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두고 주위에 10대 제자, 8대 보살, 범천과 제석천, 타방불 2구, 사천왕, 팔부중 4구 및 제불과 청문중 등을 배치하였다. 

 

지장단

삼존불 좌측에 지장단을 조성하고 지장보살과 지장시왕탱화를 봉안하였다.

 

머리띠를 두른 지장보살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보주를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육환장을 쥐었으며,

 

지장보살 뒤에 걸려있는 지장시왕탱화는

화면 중앙에 지장보살을 두고 좌우에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며, 시왕과 판관, 녹사, 사자, 옥졸, 천동, 천녀 등을 반씩 나눠 좌우에 대칭으로 배치하였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인물을 작게 묘사하여 원근법으로 묘사하였다.

 

칠성단

삼존불 우측에 칠성단을 마련하고 칠성탱화를 걸었는데,

 

화면 중앙에 금륜을 받쳐 든 치성광여래를 크게 표현하고 좌우에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며 삼존도를 구성하였고, 상단에는 칠여래를, 하단에는 칠원성군을 그리고 중단에 남극노인성과 자미대제 및 삼태성을 묘사하였다.

 

석당기

대웅전 앞마당에 석당기가 세워져 있다.

 

팔각 기단 위에 육각 비신을 세우고 머리 장식이 조각된 육모 지붕돌을 올린 것으로, 신라 헌덕왕 10년(818)에 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을 추모하여 백률사에 세웠던 석당기를 재현해 다시 세운 것이다.

 

정면에 흥륜 염촉 순교 석당기(興輪 厭髑 殉敎 石幢記) 명문이 새겨져 있고 그 밑에 이차돈이 순교하는 장면을 조각해 놓았다.

이차돈이 불사를 일으키다 왕명을 거역했다는 죄로 참수형을 당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두 손을 소매 속에 넣고 엉덩이는 뒤로 뺀 채 목을 자르도록 상채를 앞으로 구부정하게 하여 서 있고, 목을 치자 목에서 흰 피가 솟구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며 물결치는 듯 진동하는 땅 위에 관을 쓴 이찬돈의 머리가 나뒹굴고 있는 장면이다.

 

참수를 하면서 이차돈의 머리가 날아가 나뒹군 곳에 자추사라는 절을 지었는데, 자추사가 곧 백률사이다.

 

금당

석당기 뒤에 금당(金堂)이 자리하고 있다.

 

금당은 법회나 행사 등을 치루기 적합하도록 조성한 강당 형태의 선방이다. 

금당에 조계종 원로 비구니 보주당 혜해(1921~2020) 선사의 진영을 봉안하였으며, 선사의 법구에서 나온 200여 과의 사리 중 일부는 사리탑에 봉안하였고 차후 금강산에 이운할 사리 3과와 법골은 별도로 봉안하였으며, 나머지는 금당에 봉안하고 있다.

 

미륵불

금당 향 좌측에 노천 미륵전이 자리하고 있다.

 

두광이 표현된 미륵불이 의좌에 앉아 두 발을 연화좌 위에 올려 놓고 오른손은 들어 시무외인의 수인을 하고 왼손으로 보주를 받쳐 들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밀본 스님이 흥륜사에 머물면서 선덕여왕을 치료하고 승상 김양도의 병을 낫게 하자 김양도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흥륜사 오당(五堂)에 미륵 삼존상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심검당

대웅전 향 우측에 스님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는 요사 심검당이 자리하고 있다.

 

범종각

대웅전 향 좌측에 범종각이 자리하고 있다.

기둥 8개를 세우고 주심포 익공 양식의 공포와 함께 겹처마 팔모지붕을 올린 팔각정 형태의 범종각을 짓고

천경림 흥륜사 명문이 새겨진 범종을 비치하였다.

 

부도와 탑비

범종각 뒤에 부도와 탑비가 조성되어 있다.

 

좌측의 탑비는 향곡당 혜림(1912~1979) 대종사의 탑비이고 우측은 보주당 혜해(1921~2020) 선사의 탑비이다.


향곡당 혜림 스님은 경허, 혜월, 운봉으로 내려오는 선맥을 이어 받은 현대 한국불교에 선풍(禪風)을 드날린 선지식이며 1955년 종단정화 후 경주 천경림 흥륜사를 중창했다.

 

이후 1960년대에 원만행 보살이 평생 모은 돈을 시주하자 이 돈으로 흥륜사터의 집들을 사들여 복원하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에 이르러 보주당 혜해 선사에게 비구니 선방으로 운영하라고 사찰을 내주자 1980년대에 흥륜사를 크게 중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탑비 옆에 보주당 혜해 선사 부도가 조성되어 있다.

 

혜해 선사는 1944년 금강산 신계사에서 출가하였으며 1970년대에 천경림 흥륜사에 주석하며 천경림 선원을 개원한 우리나라 비구니계의 최고 원로로, 세수100세를 다하고 법랍 77세를 끝으로 2020년 천경림 흥륜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경주 흥륜사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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