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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겹벚꽃과 청벚꽃으로 유명한 천년 고찰 서산 개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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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는 충남 서산시 운산면 상왕산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로, 백제 의자왕 14년(654)에 승려 혜감이 창건하고, 고려 충숙왕 2년(1350)에 승려 처능이 중창했다고 전한다.

 

이후 자세히 전하는 바는 없고, 조선왕조실록에 성종 6년(1475) 4월 충청도 병마절도사 김서형이 사냥하면서 산에 불을 놓았는데, 그 불로 개심사를 태웠다는 기록과 1941년 대웅전을 해체 보수하면서 발견된 상량문에 성종 6년(1475)에 불탄 대웅전을 성종 15년(1484)에 다시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확인되었다.

또 광해군 11년(1619)에 편찬된 서산 사찬 읍지 호산록에 개심사는 폐사되어 수풀이 무성하고 절 뒤편에 3칸짜리 부도전만 남았다고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그렇게 된 듯하다.

이후 인조 22년(1644)과 숙종 36년(1710), 영조 16년(1740), 철종 8년(1857)에 중수하였고, 1955년 전면 보수한 데 이어, 2020년 개심사 주지로 부임한 혜산 스님이 명부전을 해체 복원하고 안양루 석축을 보수하면서 종각을 이전한 뒤, 무량수전 뒤편의 창고와 요사채를 해체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 대웅전을 비롯해 명부전, 팔상전, 산신각 등의 법당과 요사로 심검당, 무량수각, 경허당, 보장각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목판 9점을 포함한 보물 14점, 충남 유형문화유산 1점, 충남 문화유산자료 2점 등이 남아 있다.

 

겹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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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진입로에 가로수로 심은 겹벚꽃이 활짝 피어, 오는 이를 반기고 있다.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벚꽃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개심사는 겹벚꽃과 특히 청벚꽃으로 유명하다.

 

일반 벚꽃이 지기 시작할 무렵에 개심사의 겹벚꽃과 청벚꽃이 만개하기 때문에 대체로 부처님 오신 날 전후로 많은 상춘객이 몰려든다.

 

무량수각 뒤 경허당 앞에 청벚꽃이 활짝 피었고,

 

옆에서 만첩백도화(흰 복숭아)와 겹벚꽃이 어우러져 피었다.

 

일주문

 

사찰의 첫 번째 산문인 일주문은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린 다포식 건물로, 외형만 클 뿐 개심사의 오랜 연륜의 특징 없이 밋밋하게 하여 2004년에 세웠다.

 

상왕산 개심사(象王山 開心) 편액 글씨는 구당 여원구(1932~ ) 선생이 쓴 것인데, 안양루에 걸려있는 해강 김규진이 쓴 상왕산 개심사 편액 글씨와 비슷하다.

 

일주문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세심동 개심사(洗心洞 開心寺)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예전엔 일주문을 대신하였으나, 일주문이 생긴 지금은 뒷전으로 물러나 있다.

 

개심사 사적기에 따르면, 654년에 승려 혜감이 창건하고 개원사(開元寺)라 한 것을, 1350년에 처능 스님이 중창하고 마음 씻는 곳, 마음 여는 절이라 하여 개심사(開心寺)로 바꿨다고 한다.

 

연못

 

사찰 입구에 웅덩이를 파고 돌을 쌓아 조성한 직사각형의 연못은 부여 정림사지의 직사각형 연못과 동일한 형태인 백제계 연못으로, 이를 통해 개심사는 백제시대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연못가에서 자라고 있는 배롱나무(중앙의 가지만 있는 나무)는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지만 연못을 가로 지르는 외나무 다리와 함께 연못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상징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석축 위에 누각과 함께 범종각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범종각은 누각 좌측에 있었으나 2024년 누각 우측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는데,

 

범종각을 옮기면서 휘어진 기둥의 특징을 그대로 재현하여 다시 세우고,

 

범종각(梵閣) 편액을 걸었다.

 

누각

 

정면 5칸, 측면 3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지어진 누각에 정면의 창호를 2짝짜리 판장문으로 하고 하단에 머름을 설치하였으며,

 

조선 영친왕(1897~1970)의 스승이었던 해강 김규진(1868~1933) 선생이 쓴 상왕산 개심사(象王山 開心寺) 편액을 걸었다.

 

해탈문

 

사찰의 마지막 산문인 해탈문이 누각 우측에 세워져 있다.

 

개심사의 누각은 단층의 강당으로 지었기 때문에 누하 통로를 두지 않고 누각 우측을 끼고 경내로 진입하는 구조이다.

 

불이문으로도 불리는 해탈문(解脫門) 편액을 휴당 이계봉 선생이 썼다.

 

홑처마 맞배지붕의 해탈문은 외형적으로 궁색해 보이지만 외지 식당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일주문보다 오히려 무게감이 한층 더 있어 보인다.

 

해탈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와 누각을 보면 대웅전 쪽으로는 창호를 설치하지 않고 개방하였고, 내부는 기둥 없이 넓은 마루 바닥의 강당으로 조성하였으며,

 

안양루(安養樓) 편액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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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을 가운데로 좌우에 무량수각과 심검당을 배치하고 전면에 누각을 둔 ㅁ자형 가람 배치를 하였으며, 마당 중앙에 오층 석탑을 세웠다.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짓고 지붕 끝에 흰색 연봉을 횡으로 얹어 기와를 고정시킨 모습의 대웅전은 조선 성종 15년(1484)에 고쳐 지은 것으로, 당시의 모습을 거의 유지하고 있어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을 걸었다.

 

내부

 

맞배지붕의 특징인 연등천장이 가설되었으나, 불상 위에만 3개의 반자를 설치하여 운궁형 닫집을 조성하고 용과 구름을 그려 넣었다.

 

아미타 삼존불

 

아미타불을 가운데로 좌우에서 관음, 지장보살이 협시하며 구성한 아미타 삼존불은 모두 하품중생의 수인을 하였으며,

 

아미타불은 결가부좌를 하였고, 좌우 협시보살은 입상으로 서 있으나 불단에 가려 하반신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 2004년에 아미타불상에서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 이 불상이 고려 충렬왕 6년(1280) 불사를 위해 보수된 것이 확인되면서, 아미타불상은 대웅전 중수 연대인 1280년보다 앞선 13세기 초반의 작품으로 밝혀졌으며, 또한 조각 부분에서 완성도가 높은 불상으로써 고려 후기 목조불상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어 200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후불탱화

 

삼존불 뒤에 봉안된 후불탱화는 관경변상도로, 1991년 원본(영조 43년(1767) 제작)을 도난당한 뒤 다시 제작한 것으로,

화면의 상단에는 구품 왕생 장면을 그렸고, 하단에는 아미타 삼존불을 중심으로 한 설법회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신중탱화

 

불단 좌측에 마련된 신중단에 걸려있는 신중탱화는 수화승 금호당 약효와 정련, 행열 등이 1895년에 조성한 것으로,

 

화면 상단 왼쪽에 범천과 제석천을 주존으로 일, 월천자와 권속 등이 에워싸고, 그 오른쪽에는 예적금강과 주악하는 천인이 모여 있으며, 하단에는 위태천 동진보살을 중심으로 무장한 신장들이 배치되었다.

 

 

칠성탱화

 

칠성단에 걸려있는 칠성탱화는 1887년에 수화승 상옥과 함께 금지, 오성, 묘연 등이 제작한 불화이다.

 

치성광여래와 일광, 월광보살이 구성한 삼존도 주위에 도교의 관복을 입은 28수가 각각 14위씩 좌우로 에워싸고, 화면 상단에는 과일을 든 삼태 육성이 자리하였으며, 삼존도 좌우에 칠여래와 칠원성군을 배치하고 하단 중앙에 구름을 경계로한 둥근 원에 자미대제와 좌우 보필성을 묘사하였다.

 

영산회 괘불탱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임금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조선 영조 48년(1772)에 조성된 이 불화는 18세기 후기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어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석가모니불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편단의 옷을 걸치고 중앙에 서 있는데, 목이 짧고 비대한 어깨, 유난히 길고 굵은 팔과 짧은 하체 등이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였고,

 

석가모니불의 두광 주위에 7구의 화불이 둥글게 앉아 있고, 좌우에 비로사나불과 노사나불이 협시하고 앉아 있다.

 

석가모니불의 몸통 주변에는 8구의 화불이 좌우로 앉아 있으며 맨 아래 부근에는 좌우에 제석천과 범천이 손을 모은 자세로 석가모니불을 향해 서 있다.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석가모니불의 다리 부분 좌우에 범천(좌)과 제석천(우)가 합장한 채 서 있다.

 

제석, 범천도 및 팔금강, 사위보살도

제석, 범천도 및 팔금강, 사위보살도는 조선 영조 48년(1772)에 제작된 도량 장엄용 의식 불화로서 제석천도, 범천도, 사보살도, 팔금강도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영산재를 베풀기 위해 괘불도와 함께 일괄 제작된 것으로,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제석천, 범천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금강보살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제6 정제재금강보살도(좌)의 아래 화기에 건륭 삼십칠년(조선 영조 48년, 1772) 괘불화를 제작할 때 범천, 제석천, 팔대금강, 사위보살을 함께 제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개심사 영산회 괘불도와 함께 제작된 것으로 보고있다.

 

오층 석탑

 

대웅전 앞에 고려 충정왕 2년(1350)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오층 석탑이 세워져 있다.

 

개심사 명성과 달리 모양이 단순하고 조형도 그리 우수하지는 않지만 삼층이 아닌 오층 석탑이라는 점과 지붕돌 귀퉁이의 반전이라는 고려 시대 석탑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심검당

 

대웅전 향 좌측에 자리한 요사채는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1962년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서 조선 성종 8년(1477)의 3중창 기록을 확인하였으며,

 

이를 근거로 개심사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인정되어 1997년 충남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고,

 

건물 중앙에 심검당(尋劍堂) 편액이, 우측에 설선당(設禪堂) 편액이 걸려있다.

 

그리고 좌측에 정면 3칸, 측면 5칸에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을 이어 붙여 ㄱ자 형태의 큰 요사로 증축하였는데,

 

휘어진 기둥을 사용한 덕택에 개심사 심검당이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이 덧집은 휘어진 기둥도 볼거리지만 문짝 위에 두 개의 맞배지붕이 교차된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원래 심검당 좌측의 덧집을 종무소와 공양간으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폐쇄한 상태이다.

 

무량수각

 

대웅전 향 우측에 자리한 요사채는 정면 6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주심포집으로, 정면은 겹처마, 배면과 측면은 홑처마로 구성하였으며,

 

무량수각(無量閣) 편액을 걸었다.

 

주심포집의 특징에 따라 창방 위에 장여를 받치는 화반이 삽입되었는데, 꽃문양이 명부전 화반과 동일하다.

 

공포는 이익공 형식으로 전면에만 두었으며, 앙서형의 초익공은 위에 연꽃이 새겨져 있고, 이익공은 수서 형태로 아래에 연봉이 매달렸으며, 꼭대기에 봉황을 초각하였다.

 

무량수각은 예전에 대방으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종무소로 운영하고 있으며, 판장문이 달린 우측 한 칸은

 

부엌이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요사

 

무량수각 뒤 안채는 2024년 해체 보수가 완료되었는데, 최대한 옛 것을 살린 흔적이 보이고, 

 

기둥도 위는 살리고 아래 부분만 보강하는 등, 보수할 부분만 드러내고 복원하여 절의 원형을 유지한 채

 

정면 4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집으로 바깥 요사채를 지었으며, 

 

무량수각 뒤에 장독대가 딸린 요사 두 채가 옛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명부전

 

무량수각 뒤 요사채 옆에 자리한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조선 인조 24년(1646)에 지었으며, 1984년 충남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정면 협칸에 독특한 형태의 들어열개 살문을 설치하였으며, 창방 위에는 무량수각과 동일한 화반을 삽입하였고,

 

명부전(冥府殿) 편액을 걸었다.

 

전각 안에는 ㄷ자 형태의 불단 위에 지장 삼존상과 후불탱화를 봉안하고 좌우에 시왕 및 권속 등을 안치하였다.

 

지장 삼존상

 

지장보살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하품중생(또는 중품하생)의 수인을 하였고,

 

좌우에는 두 손을 모아 육환장을 끼고 합장한 모습의 도명존자와 두 손을 소매 안에 넣은 무독귀왕이 협시하며 서 있다.

 

시왕

 

지장 삼존상 좌측에 5명의 시왕과 함께 판관, 녹사, 사자, 인왕이 배치되었고,

 

우측에도 5명의 시왕과 함께 판관, 녹사, 사자, 인왕이 배치되었다.

 

배롱나무

 

명부전 우측에서 자라고 있는 배롱나무에 청벚꽃 가지가 뻗어, 마치 배롱나무가 꽃을 피운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뒤로 팔상전이 자리하고 있다.

 

팔상전

 

팔상전은 1982년 발생한 수해로 소실되었다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2016년에 복원되었다.

 

정면에 3짝짜리 띠살문을, 측면에는 출입을 위한 외짝 띠살문을 달았으며, 

 

정면 양 협칸에 법당 전각에서는 보기 힘든 난간을 두른 쪽마루를 설치하였고,

 

나무판에 흑색을 칠해 바탕으로 하고 글씨를 금색으로 쓴 팔상전(相殿) 편액을 걸었다.

 

전각 안에는 석가모니불과 후불탱화를 비롯해 팔상도를 봉안하였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이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선정인을 하고 오른손으로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였다.

 

석가모니불 좌우 아래에는 어린아이를 안은 지장보살(태안 지장)이 작은 크기로 제작되어 배열되었다.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로,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좌우에서 문수,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주위를 10대 제자, 팔부신중, 용왕과 용녀, 사천왕이 반씩 나뉘어 배열되었으며, 화면 향 좌측 상단에 흰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이 묘사되어 있다.

 

팔상도

 

제1폭 도솔래의상(좌)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 제2폭 비람강생상(우) 롬비니 동산에 내려와 탄생하는 장면

 

제3폭 사문유관상(좌) 사문에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장면, 제4폭 유성출가상(우)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제5폭 설산수도상(좌) 설산에서 수도하는 장면, 제6폭 수하항마상(우) 보리수 아래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장면

 

제7폭 녹원전법상(좌)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하는 장면, 제8폭 쌍림열반상(우)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는 장면

 

보장각

 

팔상전 우측에 정면 5칸, 측면 3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풍판이 달린 주심포집을 짓고

 

수덕사 덕숭총림 4대 방장을 역임한 송원 설정 스님이 쓴 보장각(閣) 편액을 걸었다.

 

경허당에 보관하고 있던 목판이 보물로 지정된 뒤, 이를 관리할 목적으로 보장각을 짓고 목판을 옮겨 보관하고 있다.

 

2016년 보물로 지정된 달마대사혈맥론 목판 7매와  달마대사관심론 목판 8매 등 2점을 비롯해

 

2017년 보물로 지정된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 목판 26판, 묘법연화경 목판 111판,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 목판 5판, 몽산화상육도보설 목판 6판, 도가논변모자리혹론 목판 4판, 계초심학인문 목판 8판, 오대진언 목판 9판 등 7점이 보관되어 있다.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

오방오제위도와 사직사자도는 조선 숙종 2년(1676)에 화승 일호가 임진왜란 이후 크게 유행한 수륙재나 영산재 등 사찰 의식에 사용하는 불화로 제작한 것으로, 조성 시기와 기록을 갖추고 총 아홉 폭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어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오방오제위도

고대 중국 유가의 경전인 예기에 다섯 방위를 다스리는 오제가 색과 함께 결합하여 동방은 청제, 남방은 적제, 서방은 백제, 북방은 흑제, 중방은 황제로 신앙되면서, 중방황제지군, 동방태호지군, 서방소호지군, 남방염제지군, 북방전욱지군 등으로 명명되었다.

 

중방황제지군(中方黄帝之君)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동방태호지군(東方太皥之君), 서방소호지군(西方少皥之君)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남방염제지군(南方炎帝之君), 북방전욱지군(北方顓頊之君)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사직사자도

사직사자는 연직사자, 월직사자, 일직사자, 시직사자로 이루어졌으며, 명부전에 등장하는 직부사자와 감재사자와는 별개로 오방오제위도와 구성되는 사자이다.

 

연직사자(年直使者), 월직사자(直使者),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일직사자(日直使者), 시직사자(時使者)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경허당

 

명부전 우측에 자리한 요사채는 한국 근현대 불교의 대선사 경허(1849~1912) 스님이 잠시 머물러 지내던 곳이다.

 

1879년 공주 동학사에서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지라는 한마디에 바로 깨달았다.

 

콧구멍 없는 소(牛無鼻孔處: 우무비공처)는 중국 법안종의 종주 법안 선사의 어록에 실려있는 말이다.

 

경허 스님이 이곳에 머물렀던 것을 기념하여 경허당(鏡虛堂) 편액을 걸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홑처마 우진각지붕을 올린 민도리집으로 짓고 건물 뒷편에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돌담을 세웠다.

 

산신각

 

경허당을 지나 산길로 한 오십 미터 올라가면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에 겹처마 우진각지붕의 민도리집으로 지었는데, 지붕 높이가 무척 낮고,

 

서까래는 경사가 거의 없이 완만하며, 정면의 창호를 제외한 나머지 벽체를 판장벽으로 마감하였다.

 

판장으로 가설한 천장에 연꽃을 그려 장엄하였는데, 특히 산신탱화가 위치한 천장에는

 

중앙 상단에 붉은색 문어처럼 그려진 여의주를 두고 구름 속에서 두 마리 용이 서로 엉킨 채 노려보는 모습을 그렸다.

 

산신탱화는 1965년에 금어 혜각 스님이 그린 것으로, 상투 머리에 투명 망건을 쓴 산신이 불로초를 쥐고 앉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온화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모습과 함께 뒤에서 호랑이가 산신 등 뒤로 바짝 붙어 머리를 내밀고 있으며, 산신 좌측 아래에는 공양물을 든 천녀가 작게 묘사되어 있다.

 

해우소

 

사찰 입구에 세워져 있는 해우소는 지금도 사용할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해우소 밑에 새로 세운 화장실을 주로 사용한다.

 

통풍을 위해 문을 설치하지 않았는데, 그 때문인 듯하다.

 

요사채

 

해우소 위의 한적하고 외진 곳에 요사채가 자리하고 있다. 

 

목조보살좌상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개심사 보현선원에 봉안된 높이 113.8cm의 목조보살좌상은 고려 후기에 제작되었는데, 14세기의 목조보살좌상은 보현선원의 것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예가 드물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매우 크기에 2023년 충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서산 개심사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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