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사 산내 암자인 참당암은 본래 참당사 또는 대참사(大懺寺)로 불렸던 거찰로 백제 위덕왕 28년(581)에 의운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선운사 산내 암자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참당사는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는 절이라 하여 지장보살 참회도량 선운사 참당암으로 소개되고 있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알려지지 않았고 고려 충숙왕 5년(1328)부터 이듬해까지 중수가 있었으며, 충목왕 2년(1346)부터 조선 태조 7년(1398)까지 약 52년에 걸쳐 점찰법회를 개설하는 등 독립된 사찰로 번성하였으나 성종(1469~1494) 이후 선운사가 산중의 중심 도량이 되면서 참당사의 사세는 점점 위축되었고, 지금은 선운사의 말사로 운영되고 있다.
조선 중종 25년(1530)에 중수하였고, 임진왜란 후 광해군 6년(1614), 병자호란 뒤 인조 20년(1642)에 중창이 있었으며, 정조 8년(1794)에 다시 중수가 있었다.
참당암은 대웅전을 비롯해 응진전과 명부전, 지장전, 산신각, 도솔선원 및 요사 등으로 가람을 이루었고, 보물 2점과 전북 유형문화유산 2점이 있다.
위패
사찰 입구에 밀호가람성신지위(密護伽藍聖神之位)라고 새긴 위패를 세워 놓았다.
도량을 지키는 사찰의 토지신인 가람신의 위패인데, 전각 안에 위패를 모신 것이 아니라 삿된 기운이 침범하기 쉬운 경계 지점인 입구에 표지석처럼 세웠다.
가람
참당암이 자리한 산 중턱은 그 터가 협소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무척 넓은 대지에 규모가 큰 상당수의 전각이 가람을 이루고 있다.
선원까지 구비한 창담암은 일반적인 암자의 수준을 넘어선 사찰의 규모를 하고 있다.
대웅전
대웅전은 충숙왕 16년(1329)에 중창한 이후 여러 차례의 중창과 중수가 있었으며, 1982년 기와 공사 때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 영조 29년(1753)에 다시 중창되었음이 밝혀졌다.
한편, 공포를 구성하는 부재 중 주두와 소로가 고려시대의 것과 조선시대의 것이 혼용된 것으로 보아 보수를 하면서 기존의 부재를 재활용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처럼 고려와 조선의 양식이 혼합된 대웅전은 사찰 건축 양식의 변화 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어 198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렸으며, 정면은 창방과 평방을 갖추고 주간포가 있는 다포식인 반면, 측면은 맞배지붕의 특성에 따라 높은 기둥에 공포를 두지 않았고, 정면의 포벽과 측면 벽을 회벽으로 처리해 단정하고 소박한 멋을 내었다.
공포는 외3출목으로 하고 앙서형 살미를 중심으로 주두와 소로를 좌우로 조밀하게 결구하여, 그 구성과 공작이 섬세하고 화려하며 장식성을 극대화하였다.
천장
맞배지붕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 우물천장을 가설하였고, 보 위에는 봉황 머리를 삽입하였으며,
내부에 세워져 있는 고주 사이에 불단을 마련하고 아미타 삼존불과 후불탱화를 봉안하였다.
아미타 삼존불
대웅전의 삼존불은 얼굴이 길고 코도 묵직하고 크며 특히 커다란 손이 특징이다.
아미타불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하품중생(또는 중품하생)의 수인을 하였고,
좌우의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손이 위치를 달리하여 하품중생(또는 중품하생)의 수인을 하였다.
주불은 아미타여래 9품인 중 하품중생의 수인을 하고, 좌우에 관음, 대세지보살을 협시보살로 한 것으로 미루어 아미타불이 분명한데, 안내문에는 석가모니불로 소개하였다.
후불탱화
삼존불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이다.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10대 제자, 6대 보살, 사천왕, 팔부중 4구, 천인 2구를 반씩 나누어 좌우에 배치한 영산회상도이다.
신중탱화
신중단에 걸려있는 신중탱화는 2021년에 제작되었다.
상단 꼭대기에 중앙의 작은 원 안에 예적금강을 그려 넣었고, 그 밑에 범천과 제석천을 두고 주위에 천부를 배치하였으며, 하단 가운데 위태천 동진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신장이 묘사되었다.
칠성탱화
칠성단에는 2016년에 조성된 칠성탱화가 걸려있다.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 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주위에 칠여래, 칠원성군을 비롯해 상단에 남극노인성, 삼태 육성, 28숙을, 하단에 자미대제와 좌우 보필성을 표현하였다.
독성탱화
독성단에 금어 상봉이 화승 영학과 함께 2016년에 제작한 독성탱화가 걸려있다.
불단 위에 왼손으로 오른손을 잡아 다리를 끌어 안은 채 윤왕좌로 앉아 있는 독성상이 안치되었고,
뒤에 걸려있는 독성탱화는 깊은 산중에 독성이 날카롭고 긴 발톱을 내민 채 주장자를 들고 윤왕좌로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다.
진영
영가단에는 2005년에 조성된 우은당(愚隐堂, 1888~1967) 대선사의 진영이 걸려있다.
13세에 영광 불갑사에 출가한 스님은 1930년부터 1967년 입적할 때까지 참당암 주지로 소임 하였으며 특히 6.25 전쟁 이후 사찰 재건에 큰 업적을 남겼다.
금고
대웅전에 비치된 금고를 청룡과 황룡 두 마리 용이 붙들고 있다.
동종
대웅전에 비치되어 있던 높이 100cm, 입지름 50cm 크기의 동종에 조선 정조 12년(1788) 내원암 중종으로 조성되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내원암은 폐사되었다가 최근 다시 복원되었고, 동종은 현재 선운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으며,
18세기 후반 사장의 계보와 활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어 1992년 전북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삼층 석탑
대웅전 앞에 삼층 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법당 중앙에서 좌측으로 완전히 벗어나 있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세우고 머리 장식을 올렸는데, 기단은 마모가 심해 새로 제작하여 보완하였고, 탑신과 상륜부는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응진전, 명부전
대웅전 좌측에 자리한 전각에 응진전과 명부전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정면 6칸, 측면 2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린 익공 양식의 주심포집으로 풍판이 달렸으며,
기둥 간격이 균등하지 않아 각 칸의 폭이 일정하지 않고, 기둥 길이도 주춧돌의 높이에 따라 다르다.
응진전
전각의 좌측 3칸을 응진전으로 사용하며 응진전(應眞殿) 편액을 걸었고,
내부에 ㄷ자 형태의 불단과 함께 좌우 벽에 단을 추가로 설치하여 아라한을 안치하고, 정면에 단을 높여 삼존불을 봉안하였다.
석가모니 삼존불
석가모니불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두 손을 다리 위에 올려 위를 향한 채 왼손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좌우의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은 원형 보관을 쓰고 결가부좌로 앉아 하품중생의 수인을 하고 있다.
아라한
단 위에는 100여 구의 아라한이 안치되어 있고, 문 앞에 인왕을 세웠다.
명부전
전각 우측 3칸을 명부전으로 사용하고 명부전(冥府殿) 편액을 걸었으며,
내부에 ㄷ자 형태의 불단을 마련하여 지장 삼존상과 시왕 및 권속을 안치하였다.
조선 숙종 8년(1682) 조각승 승호가 경주 동면 천동에서 지장보살을 비롯한 총 21구를 그곳 불석산에서 산출되는 불석(경주석)으로 제작한 뒤 바다를 통해 참당암에 봉안한 것으로,
21구의 존상 모두 훼손 없이 잘 갖추어져 있고, 9건의 복장 유물도 온전하여 2019년 전북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장 삼존상
지장보살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보주를 받쳐 들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얹었으며,
좌우에는 두 손을 모은 무독귀왕과 합장한 도명존자가 협시하며 서 있고, 그 앞에 동자를 세웠다.
한편,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은 지장보살 좌우에서 협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위치를 바꿔 세웠다.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지장시왕탱화로, 지장보살을 가운데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시왕과 권속 등을 반씩 나누어 좌우에 배치하였다.
시왕
지장 삼존상 좌측에 5명의 시왕과 판관, 녹사, 사자, 인왕이 배치되었고,
우측에는 5명의 시왕과 판관, 녹사, 사자, 옥졸, 인왕이 배치되었다.
현왕도
사자 뒤에 걸려있는 불화는 현왕도이며, 의자에 앉아 있는 현왕(염라대왕)과 앞에서 책을 펼치고 보고하는 관인 및 이를 듣는 5명의 관인을 그린 것으로, 융희 4년 경술(1910)에 제작되었다.
지장전
대웅전 뒤에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다.
이 전각에 있는 석조보살좌상이 1973년 선운사 약사여래불상이라는 명칭으로 전북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뒤 전각의 이름들 약사전으로 운영하여 오다가 고려 말~조선 초에 유행한 두건을 쓴 지장보살좌상으로 밝혀지고 2019년 보물로 지정되면서
약사전 편액을 내리고 지장전(地藏殿) 편액을 걸었으며,
이로 인해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이 둘이 되자 창담암은 지장보살 참회도량으로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지장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측면에도 공포가 있지만 풍판을 달았다.
풍판의 하단을 짧게 하고 직선으로 하여 측면 공포가 잘 보인다.
또한 지장전 역시 대웅전처럼 포벽과 측면 벽을 회벽으로 처리하여 단아한 모습을 하였다.
불단 위에 독존의 지장보살과 후불탱화를 봉안하고 삼면에 단을 조성하여 영가를 모신 원불을 안치하였다.
두건을 쓰고 머리띠를 두른 지장보살이 결가부좌로 앉아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놓고 오른손을 들어 보주를 받쳐들었고,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주위를 시왕, 보살 2위, 사천왕 그리고 상단 우측에 6대 보살을 표현한 지장시왕탱화이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는 상, 중, 하대를 완전하게 갖추었으며, 특히 가늘고 긴 형태의 중대석과 하대석에 여의두문이 새겨진 안상 등에서 고려 중기의 시대적 특징이 뚜렷하고,
불상의 머리띠 모양이나 보주를 받쳐 든 모습이 고려 말기 보살상 양식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어 2019년 보물로 지정하였다.
산신각
대웅전 향 좌측 뒤 높은 곳에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짓고 산신당(山神堂) 편액을 걸었다.
전각 안에 운궁형 닫집과 함께 불단을 설치하고 산신탱화를 봉안하였다.
표주박과 부채를 매단 지팡이를 든 산신이 호랑이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장면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금어 상봉이 화승 영학과 함께 2017년에 제작하였다.
요사
대웅전 향 좌측의 담장 안에 요사채가 있고,
우측에도 승방으로 보이는 요사가 배치되었으며,
도솔선원
그 뒤로 도솔선원이 자리하고 있다.
고창 참당암 찾아가는 길
고창 선운사에서 사오십 분 걸어 올라가면 참당암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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